이상설유허비 2

쓸쓸한 ‘독립운동 성지’… 우린 언제 이 빚을 다 갚을까.

쓸쓸한 ‘독립운동 성지’… 우린 언제 이 빚을 다 갚을까.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러시아) | 박재현 기자 parkjh@kyunghyang.com 입력 : 2015-07-10 21:48:58ㅣ수정 : 2015-07-10 22:56:17 ●광복 70주년 독립기념관·경향신문 공동 연해주·옌볜 탐방 지난달 20일 탐방단을 태운 버스가 러시아 우수리스크시 라즈돌리노예 강가의 비포장 도로에 멈췄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시간30여분을 달린 뒤였다. 성벽처럼 낮은 산 앞으로 펼쳐진 초원의 한편에는 아직도 발해 성터 흔적이 남아 있다. 탐방단이 찾은 곳은 보재 이상설(1870~1917)의 유허비. 인가는 물론 논밭 뙈기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묘지도, 기념비도 아닌 유허비가 세워진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서려 있다. ▲..

이상설선생 유허비

독립운동가 이상설(李相卨)선생 유허비 우수리스크 외곽의 수이푼 강변에는 독립 운동가였던 보재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가 외로이 세워져 있다. 이상설은 1907년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아 이준과 함께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장으로 가서 을사조약의 파기를 주장하였다. 이상설은 1917년 망명지인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병으로 죽으면서,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 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뒤 제사도 지내지 말라.” 즉 내 몸과 유품, 글을 모두 불태워 그 재를 여기 옛 발해의 땅이었던 솔빈강(率賓江) 물에 흘려보내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서릿발 같은 유언을 남겼던 것이다.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