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설선생생가 4

이상설선생 순국 99주기 추모식 열려

이 브라우저는 video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IE9이상 버전, 또는 크롬을 사용해주세요. 2016-04-22 18 :10:06 ‘헤이그 밀사’ 이상설 선생 99주기 추모식 열려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밀사로 참석해 독립의 당위성을 알렸던 독립운동가 보재 이상설 선생의 순국 99주기 추모식이 충북 진천군 선생의 생가에서 열렸습니다. 추모식에는 ‘이상설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인 산림조합중앙회 이석형 중앙회장과 송기섭 진천군수 등 400여명이 참석해 선생의 항일 독립운동 정신과 업적을 기렸습니다. 진천군은 기념사업회와 함께 국비와 지방비 등 87억7천만원을 들여 선생의 생가 인근에 기념관을 지을 예정입니다. 연합뉴스TV : 02-398-4409(제보) 4441(기사문의), 카톡/라인 jebo2..

숭렬사(崇烈祠)

숭렬사(崇烈祠) 숭렬사((崇烈祠)는 이상설(李相卨) 선생의 항일정신을 후세의 귀감으로 삼고, 국민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다. [유형] 도지정문화재(기념물 제77호) [소재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134-2(산직마을) [위도] 36도 51분 42초 [경도] 127도 28분 48초 ↑생가 모습 이 조그만 토벽집에서 구국을 위한 걸출한 인물이 태어 나시다. ↑이상설 생가 표지판 ↑경내의 이상설 선생 동상 ↑숭렬사 사당의 솟을삼문 ↑보재 선생의 위패(位牌)를 봉안한 사당 ↑보재 선생의 위패와 영정 ↑술렬사 전경 ↑보재 이상설선생 숭모비 비각 ↑보재 이상설 선생 숭모비 이 비에는 보재 이상설 선생의 행적을 담고 있는데, 비문은 이은상, 비명은 이범석이 짓고 글씨는 종친 이상복이 썼..

보재 이상설(溥齋 李相卨)

■ 보재 이상설(溥齋 李相卨) 경주이씨 39世 익재공(益齋公)후 오촌공파(梧村公派) 이상설선생 존영 보재(溥齋) 이상설 선생은 1870년 12월 7일 충북 진천군 덕산면 산직마을에서 경주이씨(慶州李氏) 이행우(李行雨) 선생과 어머니 벽진이씨(碧珍李氏)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7세때 이용우(李龍雨) 선생의 양자(養子)로 입양 되어, 서울로 상경한 그는 한학을 공부하는 한편, 이범세(李範世). 여규형(呂圭亨). 이회영(李會榮). 이시영(李始榮) 등과 함께 신학문을 배웠다. 헐버트(Hulbert, H.B.)와도 친교를 맺어 영어, 불어를 익히고 수학, 물리, 화학, 경제학, 국제법 등을 공부하였는데, 두뇌가 명석하고 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였다. 25세 때인 1894년(고종 31) 조선의 마지막 과거인 갑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