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설생가 9

보재 이상설 평전 출간

■ 보재 이상설 평전 출간 도서명 : 보재 이상설 평전 부제명 : 독립운동의 선구자 지은이 :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 출판사 : 채륜 정 가 : 18,000원 발행일 : 2016년 12월 20일 상세정보 : 양장, 275쪽, 크기 : 국판변형(140mm×210mm), 높이 22mm [출판사 서평] 기록되어야 할, 하지만 기억조차 못하는 보재 이상설의 큰 업적 보재 이상설은 교육자·독립운동가임과 더불어 절세의 경륜가였다. 국치를 당하지 않았거나 생존하여 광복을 맞아 해방정국에서 활동했다면 새 국가 건설에 큰 경륜을 펼쳐, 이 나라의 기틀을 좀 더 단단하게 다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우리의 역사에 선명히 기록되어야 할 독립운동의 독보적인 선구자였지만, 우리는 그의 업적은 물론 이름 석 자조차 잊고 살아 ..

보재 이상설선생 순국 100주년에 붙여.

■보재 이상설 선생 순국 100주년에 붙여. 조국을 찾고 민족의 정기를 세우려던 수많은 애국지사들 중에서도 광복의 최고 지도자로는 역시 보재 이상설 선생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상설 선생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우리나라를 에워싸고 있던 무렵인 1870년 12월 7일 충청북도 진천 출생으로 일본의 강압에 의한 을사늑약 체결로 국권이 상실되자 중국 간도 룽징 촌에 민족 최초의 신학문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설립해 민족정신 고취에 힘쓰며 해외 독립운동을 전개해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중심적인 인물로 활약했다. 또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이준 열사, 이위종 지사를 대동하고 국권침탈의 부당성을 세계만방에 알리려 했지만 일제의 계략으로 참석을 거부당해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 후 미주지역의 독립운동단체..

최초의 망명정부 – 대한광복군정부

최초의 망명정부 – 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 보재 이상설(溥齋 李相卨)은 무엇보다도 민족의식의 고양과 민족역량의 향상을 통하여 그 조직화된 역량을 거족적인 독립운동에 쏟아 넣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민족군대로서의 광복군을 본토 밖에서 양성하여 일제와의 전쟁을 치루는 한편, 본토에서는 그 전쟁을 뒷받침할 수 있기를 바랐다. 따라서 이상설은 우선 본토내외의 의병들을 규합해 나감과 동시에 한인학교에서는 인재들을 양성했다. 그리고 권업회(勸業會)의 조직을 통해서는 여러 지역에다가 비밀리에 광복군을 예비편성하고, 또한 광복군의 진지가 될 만한 비밀스러운 장소들을 물색하기도 했다. 이상설은 친분이 두터워진 곤닷지 총독과 교섭을 벌여서 그처럼 물색해 낸 장소들을 무상으로 빌어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훈련교관과..

이상설에 대한 안중근의사의 인물평

■ 이상설에 대한 안중근의사의 인물평 “이 분의 포부는 매우 크며, 세계 대세에 밝고 동양 시국을 간파하고 있다. 이범윤 같은 인물 만인을 모아도 이상설 한 분에 못 미칠 것이다.....수차 만나서 그 인물을 보니 기량이 크고 사리에 통하는 대인물로서 대신(大臣)의 그 릇됨이 부족함이 없더라...... 세계 대세에 통하고 애국심이 강하며, 교육 발달을 기도하고 국가 백년대계를 세우는 사람은 이 분일 것이다. 또한 동양 평화주의를 갖는 점에 있어서 이 분과 같이 초절한 마음과 뜻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희귀한 것이다.” 이상설(李相卨, 1870 ~ 1917) 안중근(安重根, 1879 ~ 1910) ◈보재 이상설이 세계 지도자들부터 주목 받은 인물임을 알 수 있는 증거들! ☀그의 뛰어난 지도자 실력에 러시아 ..

이상설선생 생가와 숭렬사 등, 국가 현충시설로 지정.

독립운동가 이상설선생, 진천의 생가와 숭렬사 등 국가현충시설로 지정 보훈처 결정…기념관건립 등 지역숙원사업 추진 '파란불'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마을에 건립될 이상설선생기념관투시도 충북 진천에 있는 항일 독립운동가인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1870∼1917) 선생의 생가와 사당, 새로이 건립될 기념관 등이 국가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14일 군에 따르면 보훈처는 이날 심의위원회를 열어 진천읍 산척리에 있는 선생의 생가와 인근의 숭렬사(충북도 기념물 제77호), 묘소 등을 현충시설로 지정했다. 일제강점기 헤이그 밀사 3인으로 유명한 이상설 선생은 1870년 진천읍 산척리에서 태어났다.어려서부터 신동소리를 들으며 독학으로 영어, 프랑스어 등 7개 국어를 터득했다. 1906년에는 중국 옌볜 룽징춘에 항일..

근대수학의 아버지 이상설

KBS NEWS 독립운동 자료확보 시급…입체적 고증해야 입력2015.03.02 (07:41) l 수정 2015.03.02 (08:28) l 뉴스광장 2015.03.02 3.1절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다시금 기리게 되는데요. 안타깝게도 독립운동가들의 유물과 기록을 찾기 어려워 체계적인 고증과 역사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춘환 기자의 보도입니다. 헤이그 특사로 알려진 보재 이상설 선생의 생가입니다. 근대 수학 서적을 집필한 이 선생에 대한 연구가 4년 전부터 시작되면서 독립운동가 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업적도 확인됐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과거에 급제하고 약관에 성균관 관장을 지낸 수재였지만 그동안 고증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인석(충북 진천군 학예연구사) : "직접 집..

항일 독립운동의 아버지 이상설.

▲국립 서울현충원 무후선열재단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위쪽에 있는 무후선열재단은 이상설, 이위종열사, 홍범도장군, 유관순열사 등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였으나 후손이 없거나 유해마저 찾을 길이 없는 순국선열 117위 및 정인보, 조소앙 등 6.25 당시 납북된 독립유공자 16위 등 총 133위의 순국열사의 위패를 봉안해두고 있다 이 재단은 1775년 8월 15일 광복 제30주년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후손이 없는 선열의 재단 건립위원회(대표 이은상) ’에서 묘소도 없고 후손도 끊어진 선열의 위폐를 안치하고자 국고보조를 받아서 건립하였다.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 슬래브조 단층으로 가로 19.6m, 세로 4m, 높이 4.5m, 내부면적 85.14㎡이다 위패는 3층 계단에 모셔져있으며 중앙에는 선열을 추모하기 위한..

第2回 萬國平和會議 提出 控告詞

第2回 萬國平和會議 提出 控告詞 [해설] 이 글은 고종(高宗)의 밀사(密使)로서 1907년 6월 27일자로 네델란드의 수도 헤이그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 의장과 각국 대표 위원들에게 보낸 이상설(李相卨). 이준(李儁). 이위종(李瑋鍾). 서명의 공고사(控告詞)와 그 부속 문서다. 이 글에서 밀사들은 한국에 대한 일제의 침략, 특히 1905년 11월에 늑결(勒結=을사늑약)된 을사오조약의 불법성을 규탄하였으며, 한국의 국권회복을 위한 세계 각국의 협조를 정당히 요구 하였다. 비교적 장문(長文)의 이 글은 역사적으로 일본의 침략상을 조리 있고, 생생하게 표현하였으며, 또한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명백히 밝혔다. 이 글 가운데서 을사오조약 체결 경위에 관한 부분은 이상설선생이 국내에서 직접 겪은 실담(實談)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