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위각 3

완위각[만권루]

■ 완위각[만권루] [충청타임즈] 세상엿보기 박경희 l 승인 2016. 08. 29. l 수정 2016. 08. 28 18:25 박경희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나는 결국 이뤘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조선의 독서왕 김득신 묘비 글 中) 조선시대 최고의 민간 도서관으로 일컬어지는 완위각을 찾아보기 전에 떠오르는 김득신은 완위각과는 물리적으로 직접 연관성은 없다. 다만 완위각이 당시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을 정도인 만권이 넘는 책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경이로운 만큼 한권의 책을 11만 번이나 읽었다는 김득신 역시 신비로울 만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인물이다.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완위각(宛委閣)이라는 옛 가옥이 ..

■ 기타/칼 럼 2016.08.31

완위각지(宛委閣址) 발굴

인터넷 진천자치신문 2009년04월13일 17시48분 초평 완위각지(宛委閣址) 발굴 본격화 ↑소재지 :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399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위치한 조선 후기 4대 장서각 중의 하나였던 완위각지(宛委閣址)에 대한 발굴이 본격 추진된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지난 9일 매장문화재조사 현장지도위원 회의를 통해 완위각의 위치, 규모, 건물의 배치 등의 현황을 파악함과 동시에 향후 정비·복원 사업의 기초 자료를 마련하고자 시굴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동현 문화재위원은 이 날 조사작업을 통해 “국보급은 아니더라도 지방문화재 지정까지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며 “정확한 조사를 위해 확대·발굴 작업이 면밀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완위각지의 문화재적 가치와 보존 및 정비에 대한..

이시발 선생 묘터 이야기

■ 충익공 벽오 이시발의 묘터는 명(明)나라 장수 두사충((杜師忠)이 자리 잡은터. 벽오공이 운명 하였을 당시에는 충북 청원군 오창면 그의 고향 황고(아버지)산소 아래로 장례를 치렀으나 몇 년 후 아들들에 의하여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곳으로 산소를 정한 까닭은 선조 25년(1592),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왜군이 아국(我國)의 방방곡곡에 전승하며 한양으로 밀려오자, 선조는 의주(義州)로 파천 하고 끝내는 명나라에 청병 하였을 때다. 이때 이여송(李如松) 장수가 6만 대군을 거느리고 우리나라에 원병 왔는데, 당시 명나라에서는 전쟁(戰爭)을 할 때, 반드시 지사(地師)를 데리고 와서 지리(산천의 형국을 오행에 부치어 길흉을 살피는것)를 살피게 한 연후에 진지를 구축 하였다. 이때 따라온 지사가 두사충(杜師..

카테고리 없음 2009.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