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 이우 3

선산고을의 옥산 이우(玉山 李瑀)에게 보냄

선산고을의 옥산 이우(玉山 李瑀)에게 보냄 한강 정구(寒岡 鄭逑) 날씨가 맑고 온화한 요즘 거문고를 울리며 즐기는 몸을 신령이 도우시어 별고가 없으십니까? 저는 지난해 가을부터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온 뒤로 병세가 차도가 없어 다시 조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비실비실 엎드려 날마다 몽롱한 정신으로 지내고 있을 뿐,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외에는 말씀드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 또 도사(都事)에 제수한다는 명을 받았으나 병이 깊어 기력을 회복할 방도가 없으므로 대궐로 달려가 사은하지 못하니, 황공하고 불안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노형이 살고 계시는 선산고을이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데 서로 만날 계획을 시도하지도 못하고 서찰을 주고받는 것도 적당한 인편을 만나지 못하여 그리움만 간절할 뿐입니다. 지금 ..

신사임당·율곡 이이 유품, 고향으로 돌아온다

신사임당·율곡 이이 유품, 고향으로 돌아온다. SBS | (강원민방) 이종우 | 입력 2007.03.13 22:06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유품을 앞으로는, 신사임당의 고향인 강릉의 오죽헌에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강릉으로 돌아온 유품은 모두 390여 점 입니다. 강원민방, 이종우 기자입니다. 잘익은 수박덩쿨 앞에 사뿐히 기어가는 풀벌레. 꽈리풀 주위로 몰려드는 잠자리와 꿀벌들. 풀과 곤충을 즐겨 그렸던 신사임당의 '초충도'입니다. 사임당의 그림은 섬세하고 생동감이 넘쳐, 닭이 그림에 있는 벌레를 쪼았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또 작품 곳곳엔 풍요와 다산 등 사임당의 철학도 담겨 있습니다. [정항교 관장/오죽헌시립박물관 : 맨드라미는 입신양명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

옥산 이우의 초서 귀거래사

강원도민일보2008년 06월 13일 (금)[문화재 이야기] 10. 옥산 이우의 초서귀거래사신사임당의 맏딸 이매창(1529∼1592)이 어머니 그림 솜씨를 이어받았다면 막내아들 옥산 이우(1542∼1609)는 어머니의 서풍을 물려받았다. 옥산은 자질이 뛰어나 문사가 고고하고 서화도 잘 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그의 시·글씨·그림·거문고에 특출하다 하여 ‘사절’이라 불렀으며 천문·지리·복서에도 두루 통하였다고 했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옥산공은 참깨에 ‘龜’자를 썼으며 또 두 쪽을 내어 한쪽 면에다 오언절구를 써도 글씨의 짜임이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고 했다. 1567년 진사시에 올라 사헌부감찰, 비안현감, 고부, 괴산군수를 지냈으며 1605년 군자감정에 제수 되었으나 병으로 나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