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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고을의 옥산 이우(玉山 李瑀)에게 보냄

야촌(1) 2013. 1. 7. 00:04

선산고을의 옥산 이우(玉山 李瑀)에게 보냄

 

한강 정구(寒岡 鄭逑)

 

날씨가 맑고 온화한 요즘 거문고를 울리며 즐기는 몸을 신령이 도우시어 별고가 없으십니까?

저는 지난해 가을부터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온 뒤로 병세가 차도가 없어 다시 조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비실비실 엎드려 날마다 몽롱한 정신으로 지내고 있을 뿐,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외에는 말씀드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 또 도사(都事)에 제수한다는 명을 받았으나 병이 깊어 기력을 회복할 방도가 없으므로 대궐로 달려가 사은하지 못하니, 황공하고 불안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노형이 살고 계시는 선산고을이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데 서로 만날 계획을 시도하지도 못하고 서찰을 주고받는 것도 적당한 인편을 만나지 못하여 그리움만 간절할 뿐입니다.

 

지금 하인이 그쪽으로 돌아가는 기회를 통해 잠깐 안부를 묻는데 노형은 아직도 지난날의 정의를 잊지 않고 계십니까? 저는 요즘 성주의 가야산(伽倻山) 아래, 대가천(大伽川) 위에다가 초당을 신축하였는데 매화나무 100그루와 대나무 10여 뿌리를 심고 거문고와 서책을 갖추어 둠으로써 이것들을 한적한 생활의 벗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혹시 노형께서 그린 매화 그림과 대 그림 4-5폭을 얻어 저의 청아한 감상을 도울 수 있도록 해 줄 수는 없겠습니까? 몇 겹의 구름 깔린 산과 포도 한두 그루며 물풀 한두 잎까지 포함하여 가슴속의 기발한 착상을 아끼지 말고 그려 주십시오. 초당 벽에 붙여 두고 이 흐린 눈을 맑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사물은 다 이곳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감히 말씀드린 것입니다. 거기에다 갈매기와 해오라기가 물풀 사이에 한가로이 노닐게 하여 세상의 잡념을 잊은 벗의 느낌이 들도록 해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참고내용]

옥산 이우는 한강 정구보다 1년 연상이다. 이 편지는 한강이 41세 때인 1583년(선조 16) 봄에 쓴 것이다. 한강은 이해 봄에 강원도와 충청도 도사에 연이어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고향 성주의 창평(蒼坪) 남쪽에 회연초당(檜淵草堂)을 조성하여 그곳에서 한적한 생활을 즐기며, 옥산에게 매화와 대나무 그림을 그려 보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출처 : 李澤容(이택용)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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