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권당 3

익재집 보물로 지정(역옹패설과 익재난고 )

↑1432년(세종 14) 원주에서 두 번째로 간행한 익재집 ■ 익재집(益齋集) 보물로 지정 고려시대 최고의 명신(名臣)이요, 대학자인 이제현(李齊賢,1287~1367)선생이 지은 익재난고(益齋亂藁)는 보물 제1892호로 역옹패설(櫟翁稗說)은 보물 제1893호로, 지정됐다고 2016년 2월 22일(월요일) 문화재청이 발표했다. 고려후기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파한집(破閑集/說話文學集)과 최자(崔滋,1188~1260)가 엮은 보한집(補閑集/詩話集)과 더불어 고려3대 문학비평서인 역옹패설(櫟翁稗說)은 이제현선생의 나이 56세 때인 1342년(충혜왕 3) 관직에서 물러나 자택에 머물면서 익재난고(益齋亂藁)와 함께 집필한 책이다. 이 책의 《초간본》은 저자 이제현(李齊賢)의 77세 때인 1363년(공..

원나라 수도에 세운 만권당은 고려 자주를 위한 외교사령탑.

원나라 수도에 세운 만권당은 고려 자주를 위한 외교사령탑 [중앙일보] 입력 2012.09.15 00:14 / 수정 2012.09.15 00:34 한·중 수교 20년 - 사대주의 산맥을 넘어 ① 고려 충선왕 ↑700여 년 전 고려 26대 충선왕은 원나라 수도 연경(지금의 베이징)에 만권당을 세워 놓고 쓰러져 가는 고려를 살리기 위한 힘겨운 외교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만권당이 있 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베이징 위위 안탄(玉淵潭) 공원의 전경. 사대(事大)의 겉뜻은 ‘큰 나라 섬김’이지만 그 속내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와 행하는 외교적 교섭이다. 한반도는 주변 열강의 틈바구니에 있다. 따라서 사대는 역사 속의 우리에게 늘 따르는 외교적 형식일 수도 있었다. 중국과의 수교 20주년 특집으로 그 사대의 고달픔 속..

고려 충선왕이 티벳으로 유배간 이유는?

1. 700년전.... 충선왕은 티벳으로.... 만 오천리의 유배길을 갔다. 고려 26대왕인 충선왕! 마흔 여섯이 되던 1320년, 예기치 못한 운명을 맞게 된다. 한 나라의 국왕인 그에게 유배 명령이 떨어진다. 충선왕의 유배지는 당시의 토번으로, 지금의 티벳! 그곳에 도착하는데만도 반 년이 걸리는 멀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그럼 고려 충선왕이 티벳까지 유배를 간 이유는 무엇일까? 「고려 26대 충선왕! 공민왕이나 혹은 조선 시대 여러 왕들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죠. 그런데 그는 우리 역사상 그 어느 왕보다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왕입니다. 먼 이국 티베트까지 유배를 갔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삶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티벳이라면 여기, 아시아 서쪽 끝이죠. 지도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