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宗直 3

조의제문(弔義帝文)

김종직(金宗直)의 조의제문(弔義帝文) [요약] 조선 성종 때 세조의 왕위찬탈을 풍자해 김종직(金宗直)이 지은 글. [창작연대] 1457년(세조 3) [저작] 김종직(金宗直) [형태] 제사 문 ------------------------------------------------------------------------------------------------------------------------------------- ■점필재 조의제문(附畢齋弔義帝文) 정축년(1457,세조 3) 10월 어느 날 나는 밀성(密成), 지금의 경상북도 밀양에서 경산을 거쳐 답계역(䠌溪驛),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에서 잤다. 그때 꿈에 한 신령이 일곱 가지 무늬가 들어간 예복[七章服]을 입은 헌칠한 모습으로 와서 “나는 ..

무오사화 사적(戊午史禍事蹟)

점필재집 문집 부록 / [사적(事蹟)] ■ 무오사화 사적(戊午史禍事蹟) 홍치 11년 무오(1498) 연산군(燕山君) 4년. 7월에 사화가 일어났다. 유자광(柳子光)이 연산군에게 아뢰어 대역(大逆)으로 논죄(論罪)함으로써 즉시 부관참시(剖棺斬屍)하게 하였고, 집은 적몰(籍沒)되어 정부인(貞夫人) 문씨(文氏)는 운봉현(雲峯縣)에 정속(定屬)되었다. 부인은 즉시 머리를 깎고 복상(服喪)하였다. 그는 적중(謫中=귀양을 가 있는 동안)에 있으면서 항상 탄식하여 말하기를 “가옹(家翁)의 평생의 지절(志節)은 천일(天日)이 밝게 비추어 아는 바인데, 죽은 뒤에 잘못된 화를 입으니, 이 또한 세운(世運)에 관계된 것이고 보면 의당 순종하여 받을 뿐이다.” 하고, 더 이상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 9년 동안 적중에 있으면..

정몽주와 김종직은 사문에 명성을 지니고 있으나 의아한 점이 있다

■ 정몽주와 김종직은 사문에 명성을 지니고 있으나 의아한 점이 있다, 글 :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선조 20)~1638(인조 16)』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우리 동방에 대유(大儒) 2분이 계시는데, 모두 사문(斯文)에 중한 명성을 지니고 있으나, 또한 무척이나 의아하게 여겨지는 면이 없지 않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는 죽음으로써 나라에 몸을 바칠 수 있으셨던 분이다. 그런데 우왕(禑王)과 창왕(昌王)이 폐위되고 죽음을 당할 때에는 절의(節義)를 제대로 세운 일이 있지 않았고, 심지어는 9공신(功臣)의 반열에 끼이기 까지 하였다. 이것이 의아하게 생각되는 첫 번째 일이다.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은 세조(世祖)의 밑에서 깍듯이 신하 노릇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