琶西 李集斗 2

琶西 李集斗 墓碣銘 - 익재공후 화곡공파

■ 판돈령부사 이공 묘갈명 (判敦寧府事 李公 墓碣銘) [생졸년] 이집두『李集斗, 1744년(영조 20) ~ 1820년(순조 20)』 월성 이유원 경춘 저(月城 李裕元 景春 著) 우리 정종대왕(正宗大王)은 도학(道學)이 역대의 여러 임금가운데 으뜸이셨다.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학문을 궁구하시어「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1)」를 지으신 다음 파서(琶西) 이공(李公:李集斗)에게 이를 써서 올리도록 명하고, 하교(下敎)하시길 “이(李) 아무개는 필체(筆體)가 순정(純正)하여 내가 애호하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이를 판각하고 인쇄하여 좌석 우측에 걸어놓으셨다. 그리고 순조(純祖) 때에는 이를 베껴서 신하들에게 하사(下賜)하기까지 하였다. 아! 경신년 이전2)에는 인문[人文:예교(禮敎)와..

시조 유허비. 중수기(始祖遺墟碑/重修記)

■ 신라 좌명공신 급량부대인 이알평 유허비 (新羅 佐命功臣 及梁部大人 李謁平 遺墟碑) 삼가 살펴 보건데 경주이씨 옛 족보에「시조의 이름은 알평(謁平)인데 진한(辰韓)의 표암봉(瓢巖峰), 아래에서 처음 내려왔다」하였으니, 처음 내려 왔다함은 탄생(誕生)을 말한 것이다. 시전(詩傳)에 유악강신(維嶽降神)하야, 생보급신(生甫及申), 이로다. 생각 컨데 묏부리가 신을 내려서 보아 신을 낳았도다. 묏부리의 제사를 잘 지내면 감동하여 좋은 아들을 낳는다고 생각 하였다. 「보는 보(甫)의 제후인 후작 보후(甫侯)이고 신은 신(申)의 제후인 백작 신백(申伯)을 의미한다.」라고 하였으니 소자첨(蘇子瞻 :소동파의 자)이 신(申)과 여(呂 : 甫를 말함, 甫라고 부르기 전에는 呂라고 불렀음)가, 다 묏부리에서 내려 주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