尙震 2

영의정 성안 상공(尙公) 신도비명.

忍齋集卷之二 유명조선국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 세자사 증시(贈諡) 성안(成安) 상공(尙公) 신도비명 병서(幷書 : 아울러 서문을 쓰다). 숭록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지경연사홍문관 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성균관사 오위도총부도총관 강녕군(江寧君) 홍섬(洪暹)이 글을 짓다. 봉헌대부 여성군(礪城君) 송인(宋寅)이 글씨를 쓰다. 선무랑 행 예문관검열 겸 춘추관기사관 이제신(李濟臣-둘째사위)이 전서를 쓰다. 국조(國朝)에 재상으로 세상을 뜰때까지 공명을 누린자가 세상에 적지않지만, 많은 일을 겪으며, 여러 조정을 섬기면서 신상에 재앙을 입지않고, 덕을 갖추고 장수하며 죽어서도 베푼 은혜가 두루 미친 분은 서안공(成安公) 한 분 뿐이다. 공은 이름이 진(震)이..

영의정 상진 묘(領議政 尙震 墓)

■ 상진(尙震) 1493(성종 24)~1564 조선중기의 문신. 자 기부(起夫), 호 송현(松峴)·범허재(泛虛齋)·향일당(嚮日堂), 시호 성안(成安). 본관은 목천(木川)이다. 1519년(중종 14)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사관(史官)이 되었으며, 1526년 예조좌랑 때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28년 필선(弼善)이 된 뒤 집의(執義)·응교(應敎) 등을 거쳐 1533년 대사간에 올랐다. 1535년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이어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병조판서 등을 지내고 우찬성(右贊成)·돈령부지사(敦寧府知事)가 되었으며, 1544년 중종이 죽자 춘추관지사(春秋館知事)로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에 참여했다. 그후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등을 지내고 우의정·좌의정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