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상고사(上古史)

단군 조선 상나라 중국사?

야촌(1) 2022. 12. 14. 06:01

분자인류학 논단

글 : 로마리우 ㅣ 2010. 07. 08. 06:25

 

역사는 승자가 쓴 것이고, 고대부터 지금까지 공통적인 부분이 DNA 혈통, 성씨, 언어, 문자, 지명에 남아있기 때문에, 꼭 승자가 쓴 역사서를 읽지 않더라도, 흔적들에서 얼마든지 유추 재해석 할 수 있는 것이 고대사로, 유추하는 뇌피셜이 맞는진 출토되는 유물들에서 확인하면 되는 것이고, 맞으면 수정하고, 맞지 않으면 수정할 수 없는 것인데, 출토된 유물 해석에 주관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문제로 인해 역사적 진실은 멀어질 수 있습니다.

 

사실 검증없는 뇌피셜로, 두서가 없어서 재미는 없겠지만 재미로 참고삼아 보세요.

단군과 조선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 있습니다.

상나라는 중국사지만 한족사는 아닙니다.

 

위만조선은 조선이란 이름으로 한국사에 자리 잡고 있지만 위만은 한족 왕조입니다.

조선 고대사는 한국인만의 조상들이 아닌, 아시아 북방계의 역사로 보입니다.

 

단군은 황해 주변 지역에 있던 남방계로 보입니다.

산동성 태산, 만주 요하 단군과 조선 공통 분모로 보이고, 고대엔 현재 중국 땅에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두서없이 얘기해보면,

조선(朝鮮)은 북방계로 다른 이름이 상(商)나라 북적(北狄) 맥(貊)입니다.

 

조선의 출발은 바이칼호에서 확산 남하, 태행산맥을 넘고 황하를 건너 중국 전역에 분포했고, 중앙아시아까지 넓게 확산됐습니다. 단군(檀君)은 황해 주변 남방계로 다른 이름이 동이(東夷) 예(濊)입니다.

 

단군의 출발은 동이(東夷) 황해(黃海) 방향에 있고,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은 자기 모계 가족 3,000 무리를 이끌고 황하(黃河)를 따라 서진하는 방향 황하 중류 지역엔 황제(黃帝)씨 뿌리가 되는 유웅(有熊) 곰나라가 있었고, 서진하던 황하가 북상하는 지역 남쪽엔 화산(華山)이 있고, 화산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낙양강 상류 지역 숭(崇)현에 첫 수도를 세운 하(夏)나라 사람들이 화하족(華夏族)으로, 오늘날 한족(漢族)의 조상들이 되는 사람들이다.

 

하(夏)나라를 멸망시킨 상(商)나라 말기에 반란을 일으켜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의 아버지 서백(西伯) 희창(姬昌) 주문왕(사후 추서, 기산(岐山) 백(伯)이 수상하다고 상나라 왕에게 보고한 숭후호(崇侯虎)는 사람 이름이 아닌, 숭(崇)현 하(夏)나라 첫수도였기 때문에 큰 도시  후(侯), 지역을 다스리는 큰 호족(豪族)인 호족(虎族)이란 뜻으로, 화산(華山)지역 화하족을 대표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고, 중국을 다스리는 상나라 서쪽 지역 남쪽에서, 서쪽 지역 북쪽에 인접해있던, 주문왕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자 수상하고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상나라 왕에게 보고한 것입니다.

 

참고로 주문왕 아버지 계력은 상나라 왕명을 받고 서융(西戎)을 토벌하는 큰 전공을 세웠는데, 상나라 왕은 그 세력이 커지는 것을 염려해서, 세고로 보내 죽였다는 죽서기년 내용있는 것을 보면, 좋은 관계는 아닌데, 숭후호로 인해서 상나라왕에게 잡혀가 유리성에 7년 동안 갇혀 지낼때, 큰아들 백읍(伯邑) 희고(姬考)가 상나라 왕에게 죽었기 때문에 둘째인 희발 무왕이 서백 제(帝)임금이 아닌 태자로 아버지 희창 위패를 모시고 상나라를 정벌하게 되는, 대대로 원수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숭후호(虎) 호랑이 나라를 지나서 서진하면, 그당시 중국 끝이라 할 수 있는 서쪽 지역, 현재 한중 오장현이 있었던 태백현에 태백산(太白山)이 있고, 중국은 타이바오산, 태보산으로도 부릅니다. 환웅은 태백산에 이르러서 단군(檀君)을 선언했습니다.

 

중국 동쪽 황해에 있는 동이족 환웅이 황하를 따라 서진해서, 곰나라와 호랑이 나라를 지나 태백산에 도착해서 시작한 단(檀,박달나무), 군(君) 임금은 무슨 뜻일까요?

 

중국 전역에서 자생하는 나무 청단(靑檀)이 있고,

군(君) 임금은 제(帝) 임금, 왕(王,임금), 그리고 황皇임금과 차이는 무엇일까요?

 

성(姓)은 어머니의 자녀들이란 뜻이고, 주로 사는 지역 강(江) 이름에서 따왔고, 황제(黃帝)는, 황하(黃河) 주변에서 사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임금이란 뜻입니다. 자(子)는 아들과 딸을 모두 지칭하는 글자로 성(姓)의 시조는 아버지가 아닐수도 있습니다.

 

농경 정착하는 신석기 시대가 되면서 면宀집 시(豕)돼지 키우며 함께 사는 족(族,겨레,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가족(家族)이라 합니다. 흉년으로 식량이 부족하면 다른 가족 국가와 전쟁으로 약탈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인(人,사람이 다른 가족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민(民)노예를 잡아오면, 노예를 약탈하는 사람 주인(主人) 왕(王,임금)이 됩니다. 남녀 출산 성비는 거의 1:1이지만, 다른 가족과 경쟁에서 주로 죽는 것은 남자고, 여자들은 노예로 잡혀오게 됩니다.

 

다른 가족과 경쟁에서 승리한 가족 남자는 많은 부인을 두게 됐고, 1부 다처제 가족이 성장한 호족(豪族)을 대표하는 남자를 제(帝,임금으로 부르는 것으로), 규모가 작을 땐 최고를 뜻하는 백(伯)으로 불리고, 백(白)엄지를 뜻하는 글자입니다.

 

첫번째 부인 적처(嫡妻)가 출산한 자(子)는 아들과 딸을 통칭하는 단어지만, 아버지가 호족 중심이 되고, 가족끼리 결혼하지 않기 때문에, 여자가 결혼할 때 출가 외인 다른 가족으로 구분되면서, 아들만 지칭하는 단어가 됐기 때문에, 자녀(子女)를 표현할 때 남녀(男女)를 표현하는 여(女)를 쓰는 것입니다. 적자(嫡子)는 태어날 때부터 임금이 될 자손이란 뜻입니다.

 

적(嫡,정실)은 적(啇,밑둥), 제(帝,임금 + 'ㅂ'제사그릇 합성어로), 근본이 되는 죽은 부모 신(神,귀신) 제사를 지낼 사람이란 뜻으로, 종부(宗婦)라고 합니다. 말뚝에 제물을 걸어두면 죽은 부모 혼백(魂魄)넋이 모여 시(示)보인다는 뜻으로, 면(宀집), 제사를 지내는 집에서 추(帚,비를 들고 있는 여자)가, 자기 것이라 열심히 청소하는 주인이란 뜻입니다.

 

나머지 후처 부인들이 출산한 수많은 자녀무리 서자(庶子)는 성종(姓宗)을 주관하는 제(帝)임금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 자기 모계 가족 3,000 무리를 이끌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 정착 독립하면, 그 지역 특성에 맞게 다른 사람들로부터 불리는 새 가족 이름인 씨(氏)를 창성(創姓)하게 됩니다.

 

첫번째 부인 자녀 적자(嫡子), 후처들 자녀 서자(庶子)는 인(人,사람)이지만,

전쟁에서 잡아와 친족들에게 재산으로 땅과 노예를 나눠주기 때문에,

재산인 민(民,노예)으로부터 얻은 자녀는 얼자(孼子)로 구분했고,

인(人,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인 아버지를 적서자와 달리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고,

노예는 주인이 죽으면 함께 순장했기 때문에 주인에게 목숨걸고 충성하게 됩니다.

 

구(口,입), 사람 입을 뜻하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뜻하고, 그런 마을을 둘러싼 성벽을 뜻하기도 합니다.

울타리가 있는 口마을에 혹시 모를 외침으로부터 과(戈,창)를 든 군대가 주둔하는 족읍(族邑)을 혹(或)이라 하고, 그런 마을을 둘러싼 성벽을 갖춘 도시급 족읍을 국(國,나라)으로 부릅니다.

 

대종(大宗) 성(姓)에서 파생된 수많은 소종(小宗) 씨국(氏國) 제(帝)임금들은 아버지가 같기 때문에, 상제(上帝, 제사)를 함께 지내며 군사적으로 연대하는 것이 국가(國家)로, 이웃국가와 전쟁에서 승리하고 친족들에게 전리품 땅과 노예를 나눠주면, 민(民,노예)을 약탈하는 사람 왕(王,임금)이 되고,제왕들을 거느린 제(帝,임금)를 왕(王)위에 백(白,엄지)을 올려 최고 임금인 황제(皇帝)로 부릅니다.

 

황제는 상제(上帝)의 적자(嫡子)이고, 상제가 죽으면 자율 신경에 해당되는 백(魄,넋)은 땅으로 내려간다 생각했기 때문에 제사 지낼 때, 그릇에 모래를 담아 논에서 뽑은 피 묶음을 꽂은 모사 그릇에 첫 잔을 부어 땅으로 내려간 넋을 부르고, 정신에 해당되는 혼(魂,넋)은 하늘로 올라간다 생각했기 때문에 제사를 지낼 때 향을 피워 하늘로 올라간 혼을 불러서 상제 혼백 신(神,귀신)을 모시고 어머니가 다른 성씨 가족 대소사를 논하는 것이 제사로, 적(嫡)은 그것을 주관하는 사람 주인 임금이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임금이 될 사람들이란 뜻인 것입니다.

 

아버지 정신에 해당되는 혼(魂,넋)이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에 황제를 천자(天子)로 부르는 것이고, 다른 국가에게 정복당한 제후국이 아니라면, 주권 국가는 수많은 성씨를 거느린 황제국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 황제가 된 것이고, 고종황제 이전 임금들은 중국에 사대했기 때문에 왕인 것으로, 왕은 잘하던 못하던, 점령국 황제를 모시고 백성(百姓)을 인(人,사람)이 아닌, 민(民,노예)으로 약탈하는 사람 주인인 것이 본질입니다.

 

교(敎,가르침이란), 어머니가 다른 성씨 형제자매들은 가족 대소사 분배 문제를 보는 주관이 다르기 때문에, 상충되는 다른 해법을 갖고 있고, 양쪽 주장 모두 일리가 있는 평행선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정한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것이, 동물 뼈를 태운 균열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상제의 뜻을 묻는 것이 공평한 효(爻,점괘)고, 공정한 결정을 따르지 않고 끝까지 자기 주장 이단(異端)하는 자(子)는 스스로 독립하거나, 복(攵,칠), 때려서라도 가족으로부터 추방, 종(宗)의 결정을 집행하는 것이 교(敎가르침)로, 종교는 가족의 공정한 결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군(君,임금)이 그 결정을 하는 사람 적자(嫡子)로,윤(尹,다스릴), 시(尸,주검), 왕(王,임금), 구(口사람들), 거느린 가족과 노예 생사여탈권을 결정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중국 전지역에 자생하는 나무 단(檀)의 생사여탈권을 쥔 단군(檀君) 선언은 동쪽부터 서쪽까지 통일했다는 뜻이고, 그 증거가 중국 동쪽에서 출발했다는 증거, 만주에 있는 만주족 화련자치구 환인(桓仁)현에 있고, 중국 서쪽 끝에 있는 태백산(太白山)입니다.

 

환웅이 3,000명 무리로 고대 중국을 통일했다해도, 유지됐다면 하(夏)나라, 상(商)나라가 망하고, 기자(箕子)가 단군 마지막 수도 아사달에 도착했을 때, 단군이 다른 지역으로 떠날린 없겠죠? 왕들을 파견 중국 전체를 통치하는 단군이 아닌, 각자 자기 친족끼리 족읍을 형성하고 사는 느슨한 형태일 수 밖에 없고,

 

서쪽 화산에 기반한 화하족 하(夏)나라가 성장하면서,단군은 동쪽으로 위축 태산과 황해주변으로 하나라에 밀려 동이(東夷,동쪽) 오랑캐 이민족으로 불렸고, 북적(北狄), 상나라가 남하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상구(商丘)에 첫수도를 세웠을 때, 세력이 위축 환(桓)이 있는 만주, 요하 아사달로 축소된 것으로 보입니다.

 

단군(檀君BC2333년 ~ 하(夏)나라 BC2070~BC1600년, 상(商)나라 BC1600~BC1122-BC1046년 아사달 단군.규명되지 않은 삼황오제 시절과 겹치고, 상나라는 단군을 시(尸,주검) 글자를 써 옛 나라로 표현했기 때문에, 중원에서 같은 북향에서 출발한 동족인 것인지, 동이족과 전쟁하면서 죽은거나 마찬가지란건진 알순없지만,

 

BC1122년 화하족 주나라 반란에서 BC1046년 삼감의 난 반전 실패로 평정되고 주(周)나라가 건국되는 과정중에,

상나라 기자가 아사달에 도착하면서, 단군은 밀려드는 상나라 이주민에 밀려 동쪽으로 이주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朝鮮)은 북적 상나라를 지칭하는 것이고, 단군(檀君)은 설명한 과정에 있기 때문에, 파생된 성씨들은 수천년이 흐르는 동안 중국 전역에 있을 수 있고, 황해를 주 무대로 황하에 걸쳐있기 때문에, 일본에도 단군 후손들이 정착했을 가능성 높습니다.

 

 

Y유전자 이동 경로

 

북적北狄오랑캐 이민족 상商나라 시조 설契은 화하족 하夏나라로부터 자子아들로 하대한 것이 왕실 성姓이 됐고, 무시 당하던 자子 후손 탕왕은 BC1600년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상구商丘에 첫 수도르 세웁니다.

 

 

상나라 첫 수도 상구 현재 위치와 마지막 수도 조가 위치

 

탕왕이 세운 상나라 첫 수도 상구(商丘)는 중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조공인 상업(商業)이 발달했고, 업은 목(木)나무가 번창한 모습을 표현한 글자로, 상업은 그런 뜻이고, 상인(商人)도 상업을 하는 상(商)나라 사람에서 온 말입니다. 황하 이남에 있는 도시기 때문에, 하남(河南)성으로도 불립니다.

 

정주시 주변에 유웅(有熊, 곰나라) 희수(姬水)가 있고, 주(周)나라 시조 성(姓) 희(姬)는 그곳에서 왔기 때문에 한족 뿌리가 되는 주나라가 화하족인 것입니다. 은허(殷墟)언덕에서 발견된 상나라 마지막 수도 조가(朝歌)에서 조선(朝, 아침) 글자가 왔고, 중국 각지에서 조공을 받던 수도로, 조공을 충분하게 바치지 않으면 몰살시켰는데, 이유는 북적 상나라 주인과 화하족 노예 관계기 때문이고, 조공이 쌓이는 수도 조가는 아침부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란 뜻, 조공이 쌓이는데 놀고 마실일 밖에 없으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화하족 서기(西岐), 무왕이 4만 5천 병력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목야 전투에서 70만 대군 상나라 제신 주왕은 패하고 조가로 도망해서 장작을 쌓아 불을 붙이고 타죽었고, 서기는 서백 인구 15만 작은 나라가 본질, 무왕은 바로 상나라를 멸한 것이 아닌, 상나라 태자를 허수아비 왕으로 세웠고, 감옥에 있는 상나라 기자 서여(胥餘)를 풀어줬고, 상나라를 70개 지역으로 나눠서 50개 지역에 자기 친족들을 파견 분봉하고, 주나라 수도 호경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황제국 주나라가 확정된 것은, 삼감의난 주공단이 평정한 BC1046년이 되는 것이고, 그때부터 주인국 상(商)나라는 중국 각지에 노예로 분할 이주시키는 주나라 사민정책과 함께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상나라 왕실 자성(子姓)에서 파생된 기씨(箕氏) 여(餘)는, 주왕 제신 조부의 아들로, 숙부 항렬에 있는 사람이고, 살던 지역이 백적 석가(石家)장시, 상나라가 망할 것을 직감했고, 기씨(箕氏) 일족을 이끌고 동쪽 아사달로 이주합니다. 1500년 후에 사마천은  이것을 주나라 무왕이 알고 조선후로 분봉했다고 썼는데, 화하족 주나라 한족 관점 사마천 주관 생각일 뿐입니다.

 

상나라와 주나라 관계를 생각해보면, 상나라 미자처럼 주나라에 협조한 공신도 아닌 기자를 대우해야 할 이유도 없고, 1,500년이나 지난 후에 상세한 과정이 없는 추측에 가깝습니다. 기자가 살던 백적은, 상나라 북적(北狄)중에서도 백(白)엄지, 최고 큰 어른이란 뜻이고, 기자는 상나라 왕실 큰 어른에 해당되는 사람이고, 백적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후대에 선(鮮)나라로 불리고, 태원(太原) 선우(鮮于)씨는 인접한 서쪽에서 왔습니다.

 

아마도 5호 16국 시대 석씨(石氏) 왕조도 그 인근에 있었고, 석씨는 부여(扶餘) 대소왕 동생이 압록강 주변에 세운 갈사부여 갈(曷)에서 왔고, 갈은 강가에 있는 자갈, 돌을 말하기 때문에 석씨(石氏)가 된 것이고, 석가(石家)는 석씨가 다스리던 도시란 뜻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 문화가 조선 후예인 우리와 유사점이 있는 것입니다.

 

기자가 동래한 단군 마지막 수도 아사달은 어디?

 

기자와 단군 이동

 

조朝는 망한 상나라를 계승한다는 뜻이고, 선鮮은 백적 지역에 사는 사람들 입니다.

조朝아침은 일본말도 '아사'로 읽고, '달'은 부여계 고구려 사람들이 높은 지역인데 산은 아닌 언덕을 '달'로 불렀고, 고구려 시작 졸본부여 오녀산성 역시 고高높은 지역에 있고, 부여餘는 상商나라 달력을 사용했고, 여餘는 음차만 따서 썼다는데, 어찌됐든 기자 이름 여餘와 같은 글자를 하필 음차만 따서 썼습니다.

 

그럼 상나라 시조 설契은 어디서 왔는가?

 

설련하는 셀렝게 강으로 바이칼호 남쪽에 있다.

 

설련하偰輦河와 상나라 시조 설契은 공통 글자가 있고, 친목계 할 떼 계契로 읽는데, 상나라 시조는 설로 읽고, 만주에 있던 국가 거란契丹도 같은 글자를 쓰고 거로 읽는다. 상나라 시조가 어디서왔던, 북쪽과 연관이 많은 것이 상나라고, 상나라를 잇는 조선은 맥貊북방종족인 것이다.

 

주周나라를 피해 밀려드는 이주민들로 인해 조朝아사 달에 있던 단군이 인접한 동쪽으로 이동해서 이웃하면서,

BC1122년부터 단군조선이 만주에 형성된 것으로,

이것은 주무왕이 분봉한 것이 아닌, 적대 관계로 도망와서 형성된 나라인데, 주무왕이 분봉했다는 사마천 주장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로 생각된다.

 

BC300년~BC249년 동안 연나라가 요하를 침공할 때,

북쪽에 있는 동호를 먼저 토벌하고, 고조선을 정벌했다하는데,

동호가 조양에 있던 조선일 가능성 있고, 요동에 있던 고조선이 단군일 가능성 있다.

 

조선은 연나라 침공 요하를 점령한 이후, 만주에서 부여를 시작했고,

단군은 연나라 침공 요하를 점령한 이후, 평양으로 이동했는데,

BC194년 연나라에서 위장 귀순한 위만衛滿에 속아 평양을 뺏겼고,

해로를 따라 남하 한韓을 세웠는데,

BC17년 부여에서 남하한 남부여餘 백제 온조溫祚에게 멸망당했고,

왕실 성姓이 무엇였는진 몰라도 적장자는 망한 나라이름을 성씨로 청주 한씨韓氏가 됐고,

둘째는 행주 기씨奇氏, 셋째는 북원 선우씨鮮于氏가 됐다.

 

나당 연합군에 망한 백제 마지막 태자는 당나라로 끌려가 성姓 여餘에서 서徐로 바뀐 흔적이 공통 글자에 남아있고,

고구려 백제 신라, 단군조선 후예가 한반도에 2천년 넘게 함께 살고 있는데,

북방계 조선朝鮮을 국호로 쓰면서 근대까지 기자를 시조로 모시는 제사를 지냈는데,

사대주의 산물로 규정하고 역사에서 지웠다.

 

반면 단군檀君은 조선 보다 더 오래된 옛 국가인데,

역사는 승자의 것이고,

한반도에서 한韓이 남부여에 망하면서, 승자인 국가는 북방계 조선朝鮮이기 때문에,

단군은 민간 신앙 전설로 이해되는 것으로 보인다.

 

환웅桓雄이 동쪽에서 출발 서쪽 끝에 도착한 태백산 위치.

 

환웅桓雄이 단군檀君 선언한 태백산太白山 위치

 

현재 중국에서 환(桓) 지명을 쓰는 곳은, 

 

桓仁滿族自治县(환인만족자치현)/중국 랴오닌성 번시시

桓仁县(환인현)/중국 산둥성 쯔보시

Jian’an District, 桓坡村(환파촌)/중국 허난성 쉬창시

닌창현 桓大梁(환대양)/중국 산시성 한중시

 

중국 환桓 지명 쓰는 곳은

 

만주 환련만족자치현, 하나라 때 동이 지역으로 추정되는 산동성 쯔보시 환태현, 허난성 쉬창시, 한중시 닝창현등 환웅 이동 경로에 있다. 중국 고대사는 화하족과 북방계, 해양 세력 경쟁이고, 얼마전까지 중국을 통치했던 청나라 역시 만주족으로, 북방계 조선에서 파생됐다 볼 수 있다.

 

돌궐에 밀려 타지키스탄까지 밀려간 소무구성 강국康國 왕실 성姓이 온(溫)으로 부여계, 강(康)은 주나라 문왕 아들 위강숙(衛康叔) 후손이지만, 기자 신하가 되면서 건국 공신으로 강씨(康氏 ) 성(姓)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위강숙 첫 분봉지가 강(康)나라기 때문이고, 삼감의난 평정후에 주공단이 상나라 해체, 황하 이북 수도 지역에 위(衛)나라를 세웠고, 동생 강숙(康叔)을 위후(衛侯)로 봉하면서, 위강숙이 됐고, 위만(衛滿)의 시조가 됐다.

 

삼감의 난을 평정한 주공단이 위나라에 동생 강(康)을 위(衛)에 봉하면서 한 충고가 강고(康告)로, 내용은 민심을 잘 관리하고 상나라 왕족 반란을 잘 감시하라는 것. 형의 충고에 따라서 위강숙은 둘째 아들을 기자를 감시하러 보내면서 강씨(康氏)  시조가 됐고, 적장자 큰 아들은 위나라를 계승하면서 위씨(衛氏)가 됐고, 위(衛)호위할, 옛 글자는 위卫보위할이다.

 

홍산문화 유적은 하층문화와 상층문화로 구분되고,

상층문화 유적엔 개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있고,

유목민 흔적이 쌓여 단군 흔적과 다르지 않나 생각하겠지만,

단군이 먼저 살고 있었고, 나중에 바이칼호에서 몽고 초원을 거쳐 중국을 통치하던 상 후손이 자리 잡았으니, 은허 유적과 홍산 문화 상층 유적은 뭔가 유사성 있을 것이다.

 

홍산문화 유적을 하가점夏家店으로 쓰던데,

그거 엉터리로, 상商나라는 화하족 하나라가 북적狄오랑캐 이민족으로 지칭하던 것이고,

하夏나라 사람들은 요하는 구경도 못했는데 하나라 집과 점포란 단어가 거기에 왜 쓰이나?

그것은 단군과 조선의 이질적인 이동 흐름 흔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