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경성판관 이홍업(鏡城判官李弘業)

야촌(1) 2022. 11. 3. 00:29

■ 경성판관(鏡城判官-従五品) 이홍업(李弘業)

 

조선전기 승문원박사, 병조좌랑, 고창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시립(時立), 호는 포세(逋世). 이원(李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수(李洙)이고, 아버지는 의영고영(義盈庫令) 이개윤(李愷胤)이며, 어머니는 정윤의(鄭允義)의 딸이다.

 

1579년(선조 1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박사·병조좌랑·고창현감 등을 거쳐 지평으로 있을 때 미움을 받아 함경도 경성도호판관으로 좌천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적장 가토(加藤淸正)의 군대가 함경도 회령에 이르렀을 때 회령부사 국경인(鞠景仁)이 왕자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을 비롯하여 수십 인을 포박하여 왜군에 투항하였는데, 이때 그도 체포되었다. 이에 부인 이씨와 며느리 윤씨가 가 자살했다.

 

적장이 강화문서를 작성하여 포로가 된 왕자와 대신에게 강제로 서명(署名)하게 한 뒤 그 문서를 그에게 전달하면서 행재소(行在所)인 의주로 가게 하였다.

 

행재소에 도달하였으나 적의 문서를 가지고 온 것은 나라를 욕되게 한 짓으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는 탄핵을 받아 투옥되었다. 옥중에서 세 번이나 소를 올렸는데, 왕자의 급박한 상황을 말하고 잡혀 있는 대신들의 전언을 상세히 아뢰었다.

 

적의 문서를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왕자를 구출하는 것임을 말하고, 그 방법을 모색하여줄 것을 간언하였다. 그의 충성심이 받아들여져 사형은 면하고 길주로 유배되었다가 4년 뒤에 풀려났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열려실기술((燃藜室記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