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중선(李花仲仙) - 여류명창
[생졸년] 1898년~1943년 / 46歲
일제강점기 김초향과 더불어 여류 창악계의 쌍벽을 이룬 판소리의 명창.
부산 출생으로. 김초향(金楚香)과 더불어 당시 여류 창악계의 쌍벽이었다. 본명은 이봉학(李鳳鶴)이다.
판소리 명창인 이중선(李中仙, 1903-1935)과 판소리 고수인 이화성(李化成)과는 남매간이다.
13세(1911)에 남원으로 이주하면서 남원권번(기생조합)에 기적(妓籍)을 두고 판소리를 배웠다. 14-15세 무렵 권번(기생조합) 소리선생의 소개로 장득진(張得眞, 1884-1928)을 만났고, 17세 되던 해에 본격적으로 소리 공부를 하고자 장득진의 고향인 순창군 적성면으로 이사해 약 5년간 수련했다.
장자백(張子伯, ?-1907)에게 소리를 배운 장씨 일가에서 〈춘향가〉 한 바탕을 학습한 것이다. 23세에 서울로 상경해 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의 지도를 받아 천부적인 목소리와 자질로 몇년 만에 「춘향가」·「수궁가」·「흥보가」를 공부하여 당대 여류명창으로서 가장 인기가 높았고. 26세 때는 조선물산장려회 주최의 전국명창대회에서 〈심청가〉의 '추월만정'을 불러 이름을 널리 알렸다.
또한 36세에 조선성악연구회 창립에 참여했으며, 수많은 공연을 하고 음반을 발매했다. 그는 임방울(林芳蔚, 1904-1961)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에 가장 많은 음반을 녹음한 명창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는 아무리 어려운 대목도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불러 청중을 매혹시켰으나, 오히려 거침없이 쉽게 부르는 것이 감동을 덜 주는 단점이 되기도 하였다. 일제 때에 임방울(林芳蔚)과 함께 음반을 가장 많이 녹음한 명창으로 꼽히고 있다.
그리고 대동가극단을 조직하여 지방순회공연을 많이 하였고, 일본 공연도 많이 하였는데. 1943년 재일동포 위문공연차 일본을 순회하던 중 별세하였다.
그녀의 장기는 「심청가」 중에서 ‘추월만정(秋月滿庭)’,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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