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신「蔡龍臣, 1850년(철종 1)~1941년」은 평강채씨(平康 蔡氏)로 1886년 37세에 무과를 통해 관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초상화에 뛰어난 그의 명성이 조정대신들에게 알려져 1900년 2월, 태조 이성계의 어진 모사 시 천거를 받아 주관화사로 발탁, 궁중에서 어진화사로 활발한 활약상을 보입니다.
태조어진 봉안이후 같은 해인 8월, 화재로 선원전에 모신 역대 왕의 어진이 불에 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하여 채용신은 태조를 비롯한 숙종, 영조, 정조, 순조, 익조, 헌종의 어진을 모사하였으며 또한 고종의 어진과 12정승의 영정을 그렸습니다. 고종은 그에게 각종 배려와 포상을 하고 친히 ‘석강石江’이란 호를 내려주었다.
현전하는 채용신필 초상화 가운데 가장 높은 화격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주로 1910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이들 초상화의 대상인물 대부분이 ‘우국지사憂國之士’라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으로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어가는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지켜보면서 채용신은 이에 저항한 우국지사들의 초상화를 그림으로써 시대의 현실에 대항하고자 하였을 것이죠. 채용신이 남긴 이들의 초상화 덕분에 100여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역사 속 여러 인물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의 뛰어난 필력을 통해 우국지사들의 굳센 기개를 엿볼 수 있다.
텔란트 채시라의 조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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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영조어진」, 「최익현 초상」 등을 그린 화가이다.
초명은 동근(東根). 호는 석지(石芝)·석강(石江)·정산(定山). 초상화·화조화·인물화 등을 극세극채색(極細極彩色)으로 잘 그린 화가로 70여점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1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벼슬은 칠곡군수와 정산군수를 역임한 뒤 종2품관까지 지냈다.
고종의 어진(御眞)을 비롯하여 이하응(李昰應)·최익현(崔益鉉)·김영상(金永相)·전우(田愚)·황현(黃玹)·최치원(崔致遠) 등의 초상과 「고종대한제국동가도(高宗大韓帝國動駕圖)」 등을 그렸으며, 「운낭자이십칠세상(雲娘子二十七歲像)」·「황장길부인상(黃長吉夫人像)」 등 여인상도 그렸다.
채용신 화법의 특징은 극세필을 사용하여 얼굴의 육리문(肉理文) 묘사에 주력한 점, 많은 필선을 사용하여 요철·원근·명암 등을 표현한 점, 정장관복초상(正裝官服肖像)인 경우 주인공의 오른쪽 어깨 위 등쪽으로 두 개의 볼록한 주름 같은 모습(단추)이 있는 점, 콧대 등 얼굴의 뼈가 나온 부분을 하얗게 칠하여 백광(白光)을 주는 점, 주인공이 깔고 앉아 있는 화문석의 문양과 각도가 시대적으로 변한 점 등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채용신(蔡龍臣)의 초상화(肖像畵)」(이영숙,『배종무총장퇴임기념사학논총』,1994.2)
「석지 채용신연구(石芝蔡龍臣硏究)」(허영환,『남사정재각박사고희기념동양학논총』,1984)
석지 채용신 사진(石芝蔡龍臣寫眞)
채용신 선생 초상화(탈렌트 채시라씨의 고조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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