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전(古典)

정백유의 시에 차운하다(次鄭伯兪韻)

야촌(1) 2020. 9. 21. 01:05

次鄭伯兪韻(차정백유운)

 

露泫畦蔬晩雨餘(노현휴소만우여)
生憎狂潦亂鳴渠(생증광료난명거)
多情最是南山色(다정최시남산색)
依舊靑靑不負余(의구청청불부여)

 

저녁 비 끝 채소밭에 이슬방울 맺혔는데
불어나 콸콸대는 도랑물 소리 거슬리네
사랑스럽기야 남산의 빛이 제일이니
변함없는 짙푸름이 나를 저버리지 않네.

 

- 이광윤(李光胤, 1564~1637), 『양서집(瀼西集)』 권 2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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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윤은 조선 선조‧인조 대의 문신이다. 문과에 합격하여 공조 정랑(工曹正郎)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때 의병활동을 하였고, 임금을 호종한 공으로 공신에 녹훈되기도 하였다.

 

특히 시에 뛰어나 중국에 사신을 가거나 중국 사신을 접대할 때, 적임자로 우선하여 선발됐다.

이 詩는 이광윤이 벼슬을 내려놓고 향촌에서 우거하고 있을 때 지은 것이다.

 

일단 시끄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한가로이 자연생활을 즐기는 여유가 시에 그림처럼 담겨 있어서 좋다.

 그러나 좀 더 음미해보면 시에 담긴 뜻이 단순하지만은 않다.

 

도덕군자 같은 상투적인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은연중에 염량세태(炎凉世態)에 대한 호오(好惡)를 느낄 수 있다. 

도랑은 폭이 좁고 수량이 적어 평소에는 조용히 흐르다가 비가 내리면 갑자기 불어나 세차게 흐른다

 

 마치 국량이 좁은 사람이 권세가 없을 때는 숨죽여 지내다가 권세를 얻으면 요란을 떠는 세태와 비슷하다.

그에 비해 남산은 그 듬직한 자태만큼이나 변함이 없다.

이런 대비적인 소재를 단순하게 차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경열 한국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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