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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계집(磻溪集) - 이양오(李養吾)

야촌(1) 2020. 2. 29. 15:33

 

 

 

 

 

□ 도서명 : 반계집(磻溪集) /이양오의 시문집

□ 저자 : 이양오(李養吾)

□ 생년 : 1737(영조 13)

□ 졸년 : 1811(순조 11)

□ 본관 : 학성(鶴城)

□ 책수 : 7권 3책

□ 간행연도 : 1905년

□ 발행인 : 이석인(李錫仁) /저자의 현손

 

■ 이양오(李養吾)

 

1737년(영조 13) 5월 6일∼1811년(순조 11). 조선 후기 유학자‧문장가. 자는 용호(用浩)이고, 호는 반계(磻溪)이다. 본관은 학성(鶴城)이고, 출신지는 경상남도 울산(蔚山)이다.



증조부는 이문좌(李文佐)이고, 조부는 이시발(李時發)이다. 부친 이의채(李宜埰)와 모친 정탁(鄭鐸)의 딸 영일정씨(迎日鄭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장한응(張漢應)의 딸 옥산장씨(玉山張氏)이다.



7세에 19사(史)를 읽기 시작하였는데 반쯤 읽었을 때부터 스스로 해석하며 읽을 정도로 영민하였으며, 의문점은 친척들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반복해 읽고 연구한 다음에야 그만두었다. 장성해서도 가르침을 받기 위해 대학자들을 찾아다니면서 강론을 듣고 질의하며 깨우쳤다.



1786년(정조 10) 모친상을 당한 이후 과거시험에 대한 뜻을 접고 경서를 깊이 연구하고 경사(經史)를 탐독하였다. 또 장자(莊子)‧사마천(司馬遷)‧반고(班固) 등의 진한고문(秦漢古文)과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문장을 문장전범으로 삼고 실력을 닦았다. 향년 7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이종덕(李鍾德)‧이종천(李鍾綪)이다.
묘는 경상남도 양산군(梁山郡) 원적산(圓寂山)에 있다.
저서로 『반계집(磻溪集)』이 있다.

 

[내용]

 

7권 3책. 목판본. 1905년에 현손 석인(錫仁)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정석호(鄭錫祜)·김유헌(金裕憲)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이능렬(李能烈)·이학규(李學逵)의 발문과 현손 석선(錫先)의 후지(後識)가 있다.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3에 부(賦) 1편, 시 294수, 권4에 전(箋) 1편, 서(書) 40편, 서(序) 9편, 기(記) 7편, 발(跋) 12편, 권5에 잡저 11편, 잠(箴) 2편, 축문 7편, 권6에 제문 17편, 뇌(誄) 1편, 상량문 4편, 묘지명 1편, 행장 4편, 유사(遺事) 2편, 권7은 부록으로 행장·묘갈명·발·후지 각 1편씩으로 구성되어 있다.

 

詩는 대부분 자연을 노래한 것으로서 육방옹(陸放翁)·신유한(申維翰)·이제현(李齊賢) 등의 시에서 차운(次韻)한 것이 많다. 「감회십칠수(感懷十七首)」는 위학(僞學)을 물리칠 것과 조세·환곡·도량형·형법·과거·향교·서원 등의 폐단을 지적하고, 아울러 무비(武備)가 충분하지 못한 것, 부고(負賈: 상업)의 금지, 『소학』·『대학』의 도 등을 읊은 것이다.

 

잡저의 「기삼백장보주(朞三百章補註)」는 『서경』 요전(堯典)의 기삼백장에 대해 보충 설명한 것이다.

「인심순요설(人心淳澆說)」은 인심의 박함과 두터움은 의식의 풍족에 달려 있으므로, 부세와 관청의 경비를 줄이고, 탐오한 수령·이서(吏胥)를 처벌하고, 공업·상업 종사자는 귀농(歸農)하게 하며, 문무를 양성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최식정론변(崔寔政論辯)」과 함께 당시의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지적한 글이다.

이밖에도 자장법사(慈藏法師)가 석가의 두개골을 통도사(通度寺)에 안치했다는 설을 논변한 「불골변(佛骨辯)」과 사친(事親)에서 안빈(安貧)에 이르는 내용을 경계한 「거가십잠(居家十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