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문집

성암집(醒菴集) - 이철영(李喆榮)

야촌(1) 2019. 5. 4. 17:19

성암 이철영 선생(1867. 03. 17.~1919. 12. 06) =향년53세

 

 

 

 

 

 

 

↑성암집(醒菴集)

 

◇저자 : 35世 이철영(李喆榮)/국당공 후 초려 이유태의 9대손. 조선 말의 학자. 독립운동가.

◇생졸년 : 1867년(고종 4). 3월 17일 ~ 1919년. 12월 6일  충청남도 공주(公州) 중호(中湖)에서 출생. 부친 이홍

                   제(李弘濟)와 모친 통덕랑(通德郞) 박용원(朴龍遠)의 딸 상산박씨(商山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원시 : 순조(純祖) 28년(1828) 무자(戊子)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33위(63/100)

◇판사항 石版本.

◇발행사항 : [刊寫地未詳].[刊寫者未詳- 1961年]序.

◇형태사항 : 8卷4冊> 四周雙邊, 半郭 20.5 x 15.5 cm, 有界, 半葉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向黑魚 /尾;28.5 x

                        19.5cm.

◇일반주기 : 李喆榮>호는 성암(醒庵)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충남 공주(公州) 출신/序: 辛丑(1961年) 秋

                       八月上浣肖孤李圭龍泣血謹書紙質: 洋紙

◇세계 : 한글저서 내범요람(內範要覽) 1책이 전하고./초려 이유태의 9대손. 홍제(弘濟)의 아들,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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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권1에 시 205수, 권2·3에 서(書) 61편, 서(序) 5편, 기(記) 3편, 발(跋) 3편, 제문 7편, 묘문 8편, 행장 1편, 전(傳) 1편, 권4∼6에 잡저 21편, 권7에 항의기사(抗義記事) 7편, 권8에 부록으로 가장·행장 각 1편과 제문 12편, 만사 10수, 고묘문(告墓文)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우국충정과 망국의 울분을 토로한 애국시가 많다. 

「홍읍피왜란장(鴻邑被倭亂杖)」은 1909년 그가 민적법의 시행에 반대하는 운동을 펴다가 일본경찰에 의해 홍산(鴻山)으로 잡혀갔을 때 그 울분을 토로한 시이다.

 

「삼입유수(三入幽囚)」는 1918년 호적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여 감옥에 구속되었을 때 그 감회를 읊은 것으로, 강력한 투쟁 의지와 의리 정신이 나타나 있다.「추감거의제공사유음(追感擧義諸公事有吟)」은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리자 이에 대항하여 유인석(柳麟錫)·김복한(金福漢)·이설(李偰) 등이 춘천(春川)·홍주(洪州)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킨 것을 찬양하는 시이다.

 

「문안열사중근포살왜괴(聞安烈士重根砲殺倭魁)」·「문이열사준봉사서양고복송원우공회(聞李烈士儁奉使西洋刳腹訟寃于公會)」·「문조상공병세순절(聞趙相公秉世殉節)」·「문민영환순절(聞閔泳煥殉節)」 등은 안중근·이준·조병세·민영환 등의 열행·순절에 관한 소식을 듣고 그들의 애국충절을 찬양하여 읊은 것이다.

 

서(書)의 「여간재전장우(與艮齋田丈愚)」와 「여송강재의섭(與宋强哉毅燮)」에는 명덕(明德)에 대한 개념을 밝히고 예설(禮說)을 논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잡저 가운데 「갑오동란록(甲午東亂錄)」은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의 전후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무오국복록(戊午國服錄)」은 1919년 고종이 죽자 이로 인해 온 국민의 일본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여 3·1운동으로 전개된 사실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이다.

 

「사상강설(泗上講說)」은 이간(李柬)·한원진(韓元震)·임성주(任聖周)·홍직필(洪直弼) 등 여러 학자들이 펼친 성리학적 논쟁에 대해 이이(李珥)의 학설을 기본으로 절충적인 이론을 전개한 논문으로, 성리학에 관한 깊은 지식을 보이고 있다.

 

항의기사 중 「치일국정부서(致日國政府書)」는 민적법에 반대하여 일본정부에 보낸 편지로서, 그들의 간계를 맹렬하게 성토하고 있다. 이밖에 「기유일기」·「경술일기」·「갑인일기」·「무오일기」 등도 항일 운동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한 것으로 항일독립운동사 연구에 참고가 된다.

 

선생은 잦은 옥고의 후유증으로 1919년 향년 53세로 운명하였는데 공주시 상왕동 중동골의 숭의사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성암집’ ‘내범요람’과 옥중일기인 ‘부풍일기’가 있다. 선생은 항일운동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1977년 대통령 표창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