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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삼락’(君子三樂)에 대하여

야촌(1) 2019. 4. 2. 19:48

‘군자삼락’(君子三樂)에 대하여

 

 

지 교 헌 : 철학박사 및 수필가

 

사람들은 예로부터 고락(苦樂)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다. 그것은 사람이 겪는 경험이나 정서를 압축하여 고통과 쾌락으로 단순화하고 집약하여 표현하였음을 말한다.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고락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고 있을까. 그것은 인간의 삶이 희·노·애·구·애·오·욕(喜· 怒· 哀· 懼· 愛· 惡· 慾)과 같은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단순화하면 대체로 고통과 쾌락의 형태나 또는 그러한 감정으로 나타나고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학의 칠정론(七情論)과 관련되기도 한다.-

 

사람이 일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나름대로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육체적 고통도 느낄 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 그러나 아무리 그 고통이 심하다고 하더라도 그 고통의 사이사이에는 정신적 육체적 쾌락도 느끼는 수가 많아서 새로운 의욕과 용기와 활력과 희망을 얻게 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통보다는 쾌락을 추구하게 되고 일시적인 고통은 그것을 극복하기만 하면 쾌락으로 이어지거나 전환하게 된다고 믿기도 한다.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힘 드는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은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일 수도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쾌락을 추구하는 하나의 방편이나 과정이라고 믿을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람들은 예로부터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속담을 회자하기도 한다.

 

<<맹자 진심장구 상>>(孟子 盡心章句 上)에는 다음과 같이 군자의 삼락을 말하고 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제왕(帝王)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부모가 생존하시고 형제가 화목한 것이 그 첫째의 즐거움이요,

 

위로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둘째의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준현재(英俊賢才)를 얻어 그들을 교육하는 것이 셋째의 즐거움이다.…….”(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

 

왕자(王者)가 되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이 앞뒤에 중복하여 나타난다. 맹자가 말하는 즐거움이란 천륜성분지락(天倫性分之樂)이지 귀세외물지락(貴勢外物之樂)이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천륜과 귀세가 구분되었다.

 

부모님이 모두 생존해 계시고 형제가 무고하고 화목하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누구나 공감할만하다. 또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없는 참으로 떳떳한 일이며, 또한 남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바람직한 대인관계이며, 천하의 영준현재를 만나서 그들을 가르치고 육성함으로써 국가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게 하고 나아가 천하를 정의와 화평과 낙원으로 이끌게 한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영토를 넓히고 인구를 증가하게 하는 것, 제왕이 되어 사해(四海)의 백성을 안정케 하는 것도 매우 즐거운 일이지만 군자는 그런 것을 근원적인 본성으로 여기지는 않기 때문에 군자삼락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살펴보더라도 부모님이 구존하고 형제가 무고한 것은 가정적인 즐거움이요, 양심에 거리낌이 없고 남에게 부끄러움이 없으며, 영재를 만나 길러주는 것이야 말로 가장 근본적이고 값진 즐거움이라는 말에 대하여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부모구존(父母俱存) 형제무고(兄弟無故)라는 것이 인력으로 쉽사리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풍지감(樹風之感)이라는 말과 같이 자식은 부모님을 봉양코자하나 부모님이 기다려주지 않는 수가 너무나 많고 형제의 화목과 무고도 인력으로 쉽사리 해결되지 못하는 수가 너무나 많다.

 

그리고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한다는 것도 인력으로 되지 않는 수가 많다. 다만 불괴 어천(不愧於天)과 부작 어인(不怍於人)은 사람마다 최대한도로 수양하고 노력하기만 하면 웬만큼 그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락중에서 그래도 가장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불괴 어천’과 ‘부작 어인’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것은 자신의 인격수련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 바 존심양성(存心養性; 存養)의 수행(修行)에 속한다.

 

존심양성이라는 것은 타고난 착하고 바른 마음을 함부로 달아나지 못하게 보존하는 것[求放心]이요, 타고 난 착하고 바른 성품을 잘 기르는 것이다.

 

예로부터 유학(儒學)을 비롯한 여러 가지 학문이나 종교나 사상에 근거하여 수행하던 사람들이 추구한 것은 대체로 존심양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점점 높은 차원으로 향상할 때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맹자가 말한 ‘군자삼락’은 매우 평범하면서도 인간이 추구할 기본적인 즐거움인 동시에 그것이 인간사회에 크게 공헌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군자라는 인격자가 되고 군자다운 즐거움을 추구하려면 모름지기 맹자가 말한 ‘군자삼락’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며 그 가장 중요한 비결은 다름이 아니라 존심양성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을 바라보면 맹자가 갈파한 ‘군자삼락’은 그 자취를 엿보기 어렵고 다만 배금주의나 향락주의나 ‘왕천하’의 탐욕과 행태가 온 세상을 휩쓸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천부적(天賦的) 권리로 존중되는 기본적 인권이 유린되고 유혈투쟁이라는 잔인한 수법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그것을 전횡하고 영구화하려는 정치행태가 끊임없이 일어나 온 세계는 좀처럼 평화로운 날이 보이지 않는다.

 

항상 불안과 긴장과 분노와 기만과 분쟁이 일어나고 나아가서는 혈투와 테러가 일어난다는 매스컴의 보도를 보게 되며 인류의 앞날은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혼란하고 암담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먼저 정당하지 못한 정치권력으로 이루어지기 쉬운 ‘왕천하’의 어리석은 사욕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것이 얼마나 천리(天理)에 어긋나는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부모와 형제와 자녀를 중심으로 하는 가정에서 즐거움을 추구하고,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영재를 양성하여 국가사회와 인류에게 공헌하고, 그래도 혹시 여력이 있다면 왕천하의 단계까지 이르는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당한 왕천하는 정당한 권력의 행사요 정당한 권력의 행사는 인류와 국가와 사회의 분화(分化)와 대립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투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이룩하여 모두를 통합하고 일체화(一體化)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맹자가 말한 ‘군자삼락’의 단계를 초월하는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으나 매우 높고 우원(迂遠)한 단계에 속할지도 모른다. 맹자가 말하는 ‘왕천하’는 정치권력을 맹목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정치권력은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지만 이른 바 ‘군자삼락’에는 포함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군자삼락’은 소인들이 일상적으로 추구하는 즐거움을 초월하여 군자가 추구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즐거움이요 인간됨의 보람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지금 내가 추구하는 삼락은 무엇인지 스스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2018.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