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하경(潘夏慶=潘學榮).
1840년(헌종 6)~1910년(순종 3), 전남 장성 출신으로 본명은 반학영(潘學榮)인데 일제 때 잘못 기록으로 건국훈장에 반하경(潘夏慶)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관은 거제(巨濟)이다.
그는 1852년(철종 3) 12세의 나이로 궁에 들어와 1857년(철종 8) 내시부 관창을 시작으로 대한제국기 숭록대부 지내시부(崇祿大夫 知內侍府) 승전색(承傳色)을 역임한 환관 지사이다.
1905년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 을사조약을 강제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이에 항의하여 사임하고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에 은거하였다.
1910년 8월 일본의 강제 한일병합으로 국권(國權)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분개하여 일주일 내내 식음을 전폐하고 파주 삽 다리 장터에 나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라가 망하면 신하도 망하는 것이다.
내가 죽어 민충정공(민영환)을 비롯한 여러 충신과 함께 지하에서 임금을 섬길 터이니 동포 여러분은 혈심(血心)으로 단결하라!" 고 유서를 꺼내 읽고 칼로 할복 자결했다.
그의 묘는 파주 교하 돌꼬지에 있었으나 2001년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에 이장 안장되고 1937년 그의 동료내시 13명의 힘으로 설치된 그의 묘비는 고향 장성 선영으로 옮겨졌다.
비의 찬인은 군수(郡守)를 지낸 김영한「金甯漢=생부는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지낸 김홍진(金鴻鎭)이고 양부는 판서를 지낸 김석진(金奭鎭)」 이고 글씨는 이조와 예조판서를 지낸 당대의 명필 윤용구(尹用求)이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기려수필(騎驢隨筆)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