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계 전치원 선생 문집(濯溪全致遠先生文集)
◇권수 : 3권 2책[완질]
◇간행연도 : 1858년(철종 9)
◇판본 : 목판본(木版本)
◇크기 : 21㎝(가로) x 32.3㎝(세로)
이 책은 1858년(철종 9)에 간행되었다.
권두에 유치호(柳致皜)의 서문이, 권말에 이휘령(李彙寧)· 이원조(李源祚) 등의 발문이 있다.
권수에 세계도와 연보가 있고, 권1에 시 5수, 사(詞)·명(銘)·기(記)·상향문(常享文)·제문·통유경내문(通諭境內文)·약서문(約誓文) 각 1편이다,
부록에는 언행록·사실척록(事實摭錄)·유묵 각 1편, 권2에 부록으로 제문·행장·묘갈명·묘지·상향문 각 1편, 고유문 4편, 봉안문 1편, 보유로 서(書) 2편, 시장(詩章) 14수, 서(序), 권3에 부록으로 사우 연원록 ·문인록·회통(回通)·시소(諡疏)·정예조단자(呈禮曹單子)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詩)의 「약서감회(約誓感懷)」는 임진왜란 때 거의로 자신을 나라에 맡기겠다고 맹세한 감회 시 이다.
기는 평천(坪川)의 의병장 변옥희(卞玉希)가 창의하여 순절한 사실을 적은 것이다.
「서약문」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로써 자신의 몸을 나라에 바치겠다고 맹세한 글이다.
전치원(全致遠, 1527~1596)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요. 의병장이다.
본관은 완산(完山)이고. 자는 사의(士毅), 호는 탁계(濯溪)이다.
선생은 전인(全絪)의 아들로 이희안(李希顔)의 문인이며, 김우옹(金宇顒). 곽재우(郭再祐)와 도의로써 교유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설학 이대기(雪壑 李大期, 1551~1628)와 함께 의병을 모아 낙동강에서 적의 선박을 차단하는 등 전공을 세웠다. 뒤에 그 행의(行誼)로써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에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초계(草溪)의 청계서원(淸溪書院)에 배향되었다. 학문과 글씨에도 뛰어나 이 퇴계(退溪=李滉, 1501~1570) 선생의 신주를 비롯 조 남명(南冥=曺植, 1501~1572). 이 황강(黃江=李希顔, 1504~1559)의 묘갈명을 썼다.
그의 손자 두암 전형(斗岩 全滎)은 김해의 김수로왕 비문 과 초계 향교 풍화루(風化樓) 등 많은 글씨가 오늘날 까지 전해오고 있다. 특히 1636년(인조 14) 우리나라 조정에서 일본과의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통신사절단(通信使節團)을 일본에 파견 하였는데 당시 두암 전형(斗岩 全滎)도 함께하여 글씨로 일본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귀국 시 도적(盜賊)의 월장(越墻)을 막는대 필요한 풀이라고하면서 선생에게 선물로 주어 받아와 집 주위에 뿌렸더니 기이하게도 이풀은 만지면 독기가 있어 벌이 쏘듯 아픈데 이 풀 이름이 “쐐기풀”이며 지금까지도 합천군 쌍책면 신촌마을 선생의 고가 주위에는 이 풀이 400여 년간 생존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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