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서(書).간찰(簡札)

김광욱(金光煜) 간찰

야촌(1) 2018. 11. 28. 01:54

 

■ 김광욱(金光煜)

 

1580년(선조 13) ~ 1656년(효종 7) 때인 조선 후기의 문신.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회이(晦而), 호는 죽소(竹所). 김생해(金生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원효(金元孝)이고, 아버지는 형조참판 김상준(金尙寯)이며, 어머니는 이천우(李天祐)의 딸이다.

 

1606년 진사시에 제1인으로 합격하고, 같은 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배속되었다가 검열·대교·봉교를 거쳐, 병조좌랑·정언·부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611년(광해군 3) 다시 정언이 되어, 이언적(李彦迪)과 이황(李滉)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반대하는 정인홍(鄭仁弘)을 탄핵하였다.

 

1613년 계축옥사에 아버지와 함께 연루되어 국문을 받았으나 곧 풀려났으며, 1617년 폐모논의를 위한 정청(庭請)에도 참가하지 않아 삭직되자 고양(高陽)에 은거하였다. 인조반정 후 복관되어 고산찰방(高山察訪)·고원군수(高原郡守)·판교(判校)·홍주목사(洪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1633년(인조 11) 양서관향사(兩西管餉士)로 국가재정의 확보에 큰 공을 세웠다. 1641년 황해도관찰사로 나갔고, 경직에 돌아와 병조참의가 되었으며, 1644년 부승지 겸 세자빈객으로 세자를 모시고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도승지·병조참판·호조참판을 거쳐 경기감사로 나가 수원부사 변사기(邊士紀)의 모역사건을 밝혀냈다. 효종 즉위 후 개성유수에 보임되었으며, 동지사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고, 지중추부사 겸 판의금부사를 거쳐 우참찬에 올랐다.

 

문예와 글씨에 뛰어났으며, 『장릉지장(長陵誌狀)』 을 찬하였다. 저서로는 『죽소집(竹所集)』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인조실록(仁祖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국조방목(國朝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