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대한제국. 근대사

일제의 잔학상-간도 참변(1920년)

야촌(1) 2017. 10. 26. 01:25

 

간도참변(1920)


192010월 하순 우리는 안도현으로 향하였다.
불령선인이 조직한 광복단이 봉천성 안도현 유두 산에 있었다.
한인 40여호와 중국인 3호로 된 부락으로 일본인은 한 발자국도 들여놓을 수 없는 항일 부락이었다.

 

이 부락은 모두가 광복단원으로 여러 가지 계획이 모두 여기서 모의되었다.
먼저 우리부대는 이 부락을 습격하여 가옥 40여 호를 불 지르고 광복단 연병 교관 및 제2대장, 외교부장, 외교부원 3, 구장, 부구장, 광복단 병졸(총기 휴대 중) 10여 명을 독가스로 죽였다.

 

우리부대는 직동을 공격하였다.
직동에 있는 조선인 부락은 12호 가운데 중국인은 1호도 없이 모두 불령선인뿐이다.
총독부가 손을 댈 수가 없는 곳으로 자못 중대시 하는 곳이다. 여기서 우리 부대는 일본 관헌이 간청함에 따라 바로 습격하여 불살라버리고 불령선인을 죽였다.

 

17세 이상 남자는 모두 죽이고 늙은이와 애들은 압록강 안의 조선 땅으로 보냈다.
그리고 강 부근에 있는 21도구(장백현) 불령선인 부락에는 정몽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항상 반일사상을 고취하므로 때려 부술 필요가 있다고 일본 관헌이 나에게 상담해 왔다.
같은 달 하순 습격하여 민가와 학교를 모두 불살라버리고 불령선인 27명은 독가스를 써서 죽였다. 나가노, <천락 각서> 내용 중

19201030일 우리들(선교사들)은 이 부락(토문자)에 가서 목격자의 말을 들었다.
29일 일본군 보병부대가 이 예수교촌을 포위하였다.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밀짚 위에 불을 질러 남자라면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집밖으로 끌어내어 사살하고, 채 죽지 않은 사람은 불속에 집어넣었다.

 

집안에서 이 참경을 보고 통곡하는 가족들이 있는 집까지 불을 질러 전 부락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우리들은 잿더미를 헤치고 한 노인의 시체를 보았다. 몸에는 총 맞은 곳이 두어 군데 있고 살은 벌써 다 타버리고 목만 붙어 있었다.

 

우리는 사진을 몇 장 찍고 다른 데로 갔다. 방화한지 36시간이 지났는데도 시체 타는 냄새가 났다. 각기 어린애를 업고 자기가족의 무덤 앞에 앉아 우는 소리가 너무나 처량하여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돌아다니며 이 참경을 사진 찍다가 살아남은 한 할아버지와 며느리가 통곡하면서
잿더미 속에서 불에 그을 린 살덩이와 부서진 뼈, 아직 타지 않은 것을 줍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을 청하여 기도드리고 위로하였다.

 

이때에 내 마음이 어찌나 아프고 가슴이 찢어지는지 사진기를 고정시킬 수 없어 몇 차례나 고쳐 찍었다. 내가 알고 있는 36개 촌락에서만 140명이 학살되었다.

 

이강훈, <무장독립운동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