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만사. 만장

450여 년 전 퇴계 이황 친필 만장 무덤에서 출토

야촌(1) 2018. 9. 3. 17:48

안동의 무덤에서 450여 년 전 퇴계 이황 친필 만장 출토

(안동=News1)피재윤 기자 | 2018-09-03 11:12

 

↑퇴계 이황 선생 친필 만장(한국국학진흥원 제공)

 

경북 안동시 풍산읍의 한 무덤에서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년)의 친필 만장 등 문화재급 유물이 대거 출토됐다.3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출토된 만장은 임진왜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퇴계 선생을 비롯해 서애 류성룡의 부친인 류중령이 지은 것 등 모두 14점이다.

 

한지를 두께로 3장, 길이로 2장을 붙여 만든 이 만장은 출토 당시 떡처럼 달라붙어 있었지만 크게 훼손되지는 않았다.학계에서는 출토된 유물이 보물급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퇴계 이황 선생 친필 만장(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이 중 40자의 5언 율시로 지어진 만장은 퇴계 이황 선생의 것으로, 대형 친필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만장은 상례가 끝나면 대부분 태우는데다 임진왜란 이전의 것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은 극히 드물다.


출토된 만장은 퇴계 선생을 비롯해 당대 대학자 선비들이 남긴 만사라는 점, 친필이라는 점, 내용 자체가 문집이나 다른 문헌에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만장이 출토된 무덤의 주인공은 퇴계 선생의 처삼촌인 안동권씨 가일문중 권굉의 것이며, 무덤을 만든지 453년 만인 지난해 이장 과정에 발견됐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출토된 이물질 제거작업을 완료한 뒤 올 연말쯤 유물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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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의 주인공

 

권굉(權宏)/퇴계 이황의 처 삼촌

 

[생원시] 1603년(宣祖 36) 계묘(癸卯) 식년시(式年試) [생원] 2등(二等) 23위(28/100)

                100명 합격(一等5명/二等25명/三等70명)

[전력] 유학(幼學)

[부모구존] 자시하(慈侍下)/어머니만 계심)

[생졸년] 을해(乙亥) 1575년(선조 8)~임진(壬辰) 1652년(효종 3)

[거주지] 안동(安東)

[가족사항]

◇아버지 : 권대기(權大器)

                    아버지의 과거 : 성균생원(成均生員)

 

◇처부(妻父) : 구선윤(具善胤)

                            본관 : 능성(綾城)

 

◇안항(鴈行)

   형(兄) : 권우(權宇)[生]
   제(弟) : 권성(權宬)[生]
   제(弟) : 권환(權寏)[生]
   제(弟) : 권면(權?)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인보(仁甫), 호는 진봉(震峰). 안동 이계리(伊溪里) 출생. 아버지는 증집의(贈 執義) 대기(大器)이며, 어머니는 곡강 배씨(曲江裵氏)이다. 권춘란(權春蘭)의 문인이다.

 

아버지와 형 우(宇)는 이황의 문인으로 학덕이 높았으므로, 어려서부터 부형의 가르침을 받았다. 1603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1627년 학행으로 추천을 받아 상의원별좌(尙衣院別坐)가 되었다.

 

그 해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로 왕실을 호종하여 소무(昭武)와 영사(寧社)의 두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되고 별제(別提)에 승진하였으나, 병으로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630년 동궁의 부수(副率)가 되고, 1633년 영릉참봉(英陵參奉)이 되었으나 곧 사임하였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의 치욕을 당하자 시를 지어 국가의 운명을 개탄하고 태백산 진봉(震峰) 아래 들어가서 띳집을 짓고 와룡초당(臥龍草堂)이라 이름한 뒤, 앞에 작은 단을 쌓아 ‘대명오(大明塢)’라 하고 대나무를 심어 굳은 절개를 표하였다. 저서로는 『진봉일고』 2권이 있다.

 

참고문헌 : 진봉일고(震峰逸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