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남 이희수 서첩(少南 少南 李喜秀 書帖)
1916년 京城 애동서관(涯東書館) 발행 조선 말기의 서화가 少南 李喜秀 書, 金圭鎭 編 [이소남서첩(李少南書帖)] 2帖 완질로 말미에 門人海岡金圭鎭謹識의 跋(소남의 생질)과 판권기록이 있다. 상태 양호하다. <크기> 23.6 x 14.9cm
[작가 소개]
이희수(李喜秀),
1836(헌종 2)∼1909(순종 3). 조선 말기의 서화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지삼(芝三), 호는 소남(少南)·경지당(景止堂).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祥原)에서 살았다고 한다.(상원(祥原): 평남 중화군 상원면> 평남 대동강 남쪽의 산간분지에 자리 잡고, 평양·중화(中和)·강동(江東) 등을 잇는 요충지로 알려졌다.)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루던 명필인 스승 조광진으로부터 20여년 글씨를 배운 소남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지역 서화계를 대표하는 작가였다. 산수화와 난초·대나무 그림에 모두 능하였고 7세에 벌써 전(篆)·예(隷)·해(楷)·행(行)을 모두 잘 썼으며, 칠흑 같은 밤에 글을 베껴 써도 모두 한결 같이 규격에 맞았다고 한다.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자 문하에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 또는 서화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성격이 단정하고 곧았으며, 강하고 기이한 화풍을 보였다.
유작 중 남종화풍에 토대를 두고 있는 <설경산수도(雪景山水圖),개인 소장>는 상단에 적힌 제시(題詩)와 함께 독특한 느낌을 주며, 눈 덮인 강 언덕과 침엽수의 표현에서도 거친 독특한 필치를 보여준다.
그의 수제자로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서화가로 유명한 해강 김규진(海岡 金奎鎭, 1868년~1933년)은 소남의 생질(甥姪)이고, 말년에 지금의 삼척시와 동해시 북평․송정 등지에 머물면서 필력이 절정에 이르렀고,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남계 김연민, 만재 홍락섭, 계남 심지황 등 지역 출신의 걸출한 제자들을 배출했다.
↑소남 이희수 서예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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