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고조선(古朝鮮)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疆域)

야촌(1) 2018. 7. 23. 21:40

■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疆域)

 

고조선(古朝鮮)의 위치와 강역(疆域=한 나라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에 대한 지금까지의 학설은 대동강 중심 설, 요동 중심 설, 이동설로 크게 나뉜다. 각각의 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대동강(大同江) 중심 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일연(一然)은 단군왕검이 평양에 도읍 하여 조선을 건국하였다는‘고기(古記)’의 기록을 인용하면서, 평양성은 지금의 서경이라는 주석을 분명히 달고 있다.

 

이는 일연이 고조선의 중심을 한반도 안으로 인식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조선시대에 보다 명확해진다. 이를테면 정약용(丁若鏞)과 한치윤(韓致奫)등 실학자들은 고조선의 중심을 압록강 이북에 비정한「요사(遼史)」를 비판하면서 고조선의 중심이 한반도에 있었음을 고증하였고, 따라서 패수((浿水=고대 조선어의 江을 뜻하는 명사)를 압록강으로 보았다.

 

② 요동((遼東) 중심 설

「응제시주(應製詩註)」의 저자 권람은 낙랑(樂浪)을 평양이 아닌 압록강 북쪽으로, 기자가 건국한 지역을 요동, 요서로 비정(比定)하는 요동 중심 설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17, 18세기 남인학자들에 의해 계승되었고, 20세기에 이르러 신채호(申采浩), 최남선(崔南善), 정인보(鄭寅普) 등의 민족주의 사학자들에게 이어졌다. 이들의 연구는 고조선의 중심과 한사군(漢四郡)의 위치가 한반도 밖에 있었다는 견해로 요약된다.

 

최근 윤내현(尹乃鉉),은 새로운 시각에서 고조선의 국경은 유동적이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고조선은 북경근처에 있는 롼허 강(灤河江) 유역과 갈석산(碣石山) 지역을 중국과의 경계로 하여 지금의 허베이 성(河北省) 동북부로부터 내몽골(內蒙古) 자치구 동부, 랴오닝 성(遼寧省)·지린 성(吉林省)·헤이룽장성(黑龍江省), 전부와 한반도 전체가 강역이었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③ 이동(移動) 설

고조선의 초기중심지는 요동에 있었는데, 후기에는 대동강 유역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한편, 최근에는 고고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한 고조선의 이동설이 제기되고 있다.

 

김정학(金廷鶴)은 요서(遼西), 요동(遼東)의 비파형 동검 문화에 주목하여 다링 강(Daling,=大凌河) 유역의 차오양(朝陽) 지방문화가 요동지방보다 앞서는 것으로 이해하여, 차오양 지방에서 정치적 통합을 이룬 세력이 요동 지방에 정착하여 고조선 왕국을 건설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조선시대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