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한민족의 뿌리

우리 역사의 시작은 과연 언제부터인가?

야촌(1) 2018. 6. 11. 03:47

우리 역사의 시작은 과연 언제부터인가?

2006.03.16 17:08

(우리 사상의 정통성과 세계성) 
- 미조(彌照) 김중태(金重泰)


<우리나라 역사의 출발점은 언제로부터 잡을 것인가>하는

  문제에 관하여 두 가지 설을 다 같이 고려해야 한다.
 
1) 첫 번째 설은,

신라 내물 이사금 시절 삽량주(오늘의 경남 양산) 간(干)을 지낸 박 제상(朴 堤上)이 쓴 『징심록 십오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부도지(符都誌)』에 의하면, 육만 삼천년 전 파미르고원에 마고성이 있었고, 마고성의 성주는 마고할머니였는데, 마고할머니가 두 딸을 낳았으니, 그 이름이 궁희(穹姬)와 소희(巢姬)였다.


궁희는 황궁(黃穹)씨와 청궁(靑穹)씨를 낳았고, 소희는 백소(白巢)씨와 흑소(黑巢)씨를 낳았다.
부도지는 우리 민족의 기원을 마고 → 궁희 → 황궁 → 유인 → 한인 → 한웅 → 한 임검으로 계승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미의 변란으로 마고성이 해체됨에 따라 황궁 씨의 동생인 청궁 씨는 마고성의 동쪽 문을 나가 운해 주(雲海洲), 즉 오늘의 중원지역으로 갔고, 백소 씨는 권속들을 이끌고 서쪽 문을 나가 월식 주(月息洲), 즉 오늘의 중근동 지방으로 가고, 흑 소씨는 권속을 이끌고 남쪽 문을 나가 성생 주(星生洲), 즉 오늘의 인도 및 동남아 지역으로 가고, 황궁 씨는 권속을 이끌고 북쪽 대문을 나가 천산 주(天山洲), 즉 오늘의 파미르 고원 북동쪽이니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만리장성 이북의 땅 모두가 천산 주였다.

비록 육만 삼천년 전의 이야기라고는 하나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점은, 마고성이야기가 우리민족의 문화와 풍습에 알게 모르게 깊숙이 스며든 자취를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고, 궁희, 소희, 세 할머니를 합하여 삼신(三神)할머니라 부르는데, 지리산 노고단은 바로 마고할머니를 모시는 제단이며, 삼신 할매(경상도), 삼신할머니(서울), 삼신 할망(제주도)은 아이의 태어남과 양육 그리고 무병장수를 책임 맡은 신으로 섬겨져왔고, 삼신단지, 삼신 바가지, 삼신주머니는 모두 삼신할머니 신앙이 남긴 언어의 발자취이다.


삼신할머니에게 올리는 제물로는 하얀 쌀밥과 미역국, 깨끗한 물 한 그릇이 전부인데, 태어난 아이의 백일이나 돌에는 떡을 놓기도 한다. 산모가 아기를 낳은 후 미역국에 밥 말아 먹는 풍속은 삼신할머니 신앙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신화란 그것이 비록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논리와 상식을 초월하기에 진실에 가까운 것이며, 심리학자 융에 의하면 “인간의 집단무의식”속에 용해되어있는 꿈과 희망의 상징으로서 인류의 정신사를 조명함에 있어 신화는 필요불가결한 부분으로 간주되고 있다.
 
2) 두 번째 설은,

이조 연산군 조와 중종 조에 찬수 관을 지낸 이 맥(李 陌)이 지은 『태백 일사(太白逸事)』 중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記)」 <한국본기(桓國本記)>에 쓰여 저 있는 우리의 역사이다.

한국의 시조인 한인은 우리가 민간에서 부르는 하느님 혹은 한님으로서, BC 7197년 전 파미르고원 일대에 존재하였던 12개 한국을 다스렸다고 기록되어있고, 7대에 걸친 역년은 3301년이다.

한국의 말기에 이미 천계(天界)에 복귀한 한님께서 삼위(돈황 지역) 태백(섬서 성 태백산)을 내려다보시고, 모두 가히 “홍익인간”할 곳이로다 하시며 그의 아들 한웅을 내려 보내, “하늘의 뜻을 열고 가르침을 세워 세상을 잘 다스려 만세의 자손에 홍범이 돼라”하였다.

 

한인으로부터 천부인 3개(○, □, △)를 받아 태백산으로 강림하여 세운나라가 ‘신시(神市)’이다.
신시는 18대에 걸쳐 역년 1565년이고, 뒤를 이어 한웅의 아들 단군왕검이 세운, 소위 말하는 고조선의 역년은 2097년이다.

박 제상의 『부도지』에는 육만 삼천년을 기준으로 하고, 『태백일사』는 9201년을 우리역사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어 시기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핵심내용에 있어서 공통점이 있으니,

그 첫째는, 『부도지』가 마고, 궁희, 소희의 삼신할머니, 즉 여자 삼신을 인류의 조상으로 보는 반면에, 한국 → 신시 → 단군조선으로 계승되는 역사를 시발점으로 삼는 『태백일사』는 한인 → 한웅 → 한검으로 이어지는 남자 삼신을 신앙의 본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부도지』에 나오는 마고시대나 『한단고기』에 나오는 한웅의 신시개천은 다 같이 하늘나라 도시의 이상을 지상에 실현시키려한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부도지에는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 여겨지는 황궁씨가 마고성의 제일 어른이었으므로, 오미의 변란이 일어나 마고성이 해체되었을 때, 천궁 씨, 백소 씨, 흑소 씨와 황궁 씨의 권속들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우리가 비록 나뉘어 살기로 뜻을 정하고 지금은 각각 흩어지지만 어느 때인가 반드시 마고성의 부도(하늘나라 도시)를 복본(復本) 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하였다.

『부도지』를 남긴 박 제상의 14대손인 박 문현은 52대 효공왕 때의 사람으로 당시의 어지러운 세태를 비판하며 세론(世論)을 환기하며 말하기를 “신라입국의 근본은 부도를 복본 하는데 있다.

 

위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 일에 힘쓸 것이요, 감히 사사로이 영화를 도모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는 입국 당시의 약속이기 때문에 천년이 지났다 할지라도 어제처럼 살아있는 것이다.

 

어찌 그 본의를 잊는 것을 참을 수 있겠는가?옛날의 조선은 사해(四海)의 공도(公都)요, 한 지역의 봉국(封國)이 아니며, 단군의 후예는 모든 종족들의 심부름꾼이요, 한 임금의 사사로운 백성이 아니다”고 하였다.

한편 5902년 전, 계해 년 9월 9일(중양절) 한웅거세발한이 하늘나라의 이상을 지상에 실현시키기 위해서, 중원(中元) 삼극의 하나인 천시원(天市垣)으로부터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강림하여 신시를 개천한 목적도 바로 부도의 재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미조는 우리역사의 두 가지 다른 기원을 문화사와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다 함께 다루려 노력할 것이다.

한웅 거세 발한이 가지고 오신 <천부경(天符經)> 및 <삼일신고(三一神誥)>는 우주의 생성과 진화, 개벽, 영원한 순환의 비밀을 담은 물리학이며, 종교학이며, 인식론과 본체론(영혼 론)을 담고 있는 고도의 철학 사상이므로 역사기록이라 볼 수는 없으며, 천부인 3개를 구체화시킨 천부경의 <인중 천지일(人中天地一)> 사상은 신시의 전서를 기초로 한 한문과, 3세 가륵단군 시절 을보륵이 만든 국민 정음 38자(가림토 문자)와, 이것의 개량 형이라 말할 수 있는 조선 세종 때의 훈민정음 28자의 모체가 되고 있어 언어학과 기호 해석학의 시초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천부경>과 <삼일신고> 등은 강의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다루고자 한다.

『단기고사』의 저자 대야발은 서문에서 당나라 장수 소정방과 이 세적이 백제와 가우리의 사고(史庫)를 다 불 질러 버려, 옛날의 역사를 편찬하기 위해서 돌궐 국(오늘의 카자흐스탄) 까지 왕래하며 사료(史料)를 수집했다 하였으며, 현존 우리나라의 역사학자 대부분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위와 같은 주장이 과연 타당하다면, 전승국인 신라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인 사료들을 고스란히 다 보관하고 있어야 할 텐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신라인에 의해 쓰인 신라사도 없을뿐더러 우리의 고대사도 없고 기껏 남아있는 것이 박 제상의 『부도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