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고종 2) 이유태의 7대손 이경(李鏡) 등에 의해 간행된 조선말의 대유학자 이유태의 문집이다
초려집(草廬集) : 목활자본 25권 14책 완질
木活字本으로 인출한 조선후기의 문신, 학자인 이유태(李惟泰,1607~1684) 선생의 詩文集이다.
권두에 崇禎紀元後四癸亥(1863)...은진 宋來熙서(敍)가 있다.<크기> 18.5×25.6cm.
●저자 인물소개
이유태(李惟泰).
1607(선조 40)∼1684(숙종 10). 조선후기의 문신·학자.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 본관은 경주(慶州)로 아버지는 유학(儒學) 이서(李曙)이다. 김집(金集)의 천거로 1634년(인조 12) 희릉참봉(禧陵參奉)이 되고 이어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ㆍ대군사부(大君師傅)에 임명되었지만 나가지 않았다.
1658년(효종 9) 송시열(宋時烈)ㆍ송준길(宋浚吉)의 천거로 지평(持平)이 되고, 이듬해 시강원 진선(侍講院進善)ㆍ집의(執義)를 거쳐 현종 즉위 후 공조참의와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역임하였다. 1660년(현종 1) 복제시비 때 호군(護軍)으로 있으면서 송시열(宋時烈)의 기년설(朞年說)을 옹호하였다.
뒤이어 효종 말년 이래 적어두었던 만언소(萬言疏)를 올려 시폐(時弊)를 논하고 구민(救民)과 구국(救國)의 대책을 제시, 왕이 비변사(備邊司)로 하여금 검토하게 했으나 제대로 채택되지 않자 실망해 사직, 귀향하였다.
그 뒤에도 이조참의ㆍ동부승지ㆍ우부승지ㆍ이조참판 등이 제수되었지만 취임하지 않았다.
본래 한미한 출신으로서 처음에는 민재문(閔在汶)에게 배우다가 김장생(金長生)ㆍ김집(金集) 부자를 사사, 그 문하의 송시열ㆍ송준길ㆍ윤선거(尹宣擧)ㆍ유계(兪棨)와 더불어 호서산림 오현(五賢)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소론에 의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문인들이 고향에 금산서원(錦山書院)을 세워 제향 했다가 1713년 노론 때문에 일시 훼철되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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