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희수(李喜秀)-조선말 서화가

야촌(1) 2016. 8. 28. 12:36

■ 이희수(李喜秀)

 

1836(헌종 2)∼1909(순종 3). 조선 말기의 서화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지삼(芝三), 호는 소남(少南)·경지당(景止堂). 상원(祥原/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1963년 평양시로 편입)에서 살았다고 한다.

 

산수화와 난초·대나무 그림에 모두 능하였고 7세에 벌써 전(篆)·예(隷)·해(楷)·행(行)을 모두 잘 썼으며, 칠흑 같은 밤에 글을 베껴 써도 모두 한결같이 규격에 맞았다고 한다.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자 문하에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 또는 서화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성격이 단정하고 곧았으며, 강하고 기이한 화풍을 보였다.

 

유작 중 남종화풍에 토대를 두고 있는 <설경산수도 雪景山水圖>(개인 소장)는 상단에 적힌 제시(題詩)와 함께 독특한 느낌을 주며, 눈덮인 강 언덕과 침엽수의 표현에서도 거친 독특한 필치를 보여준다.

 

[참고문헌]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한국회화대관』(류복렬 편, 문교원, 1969)

 

 

 

 

 

 

 

 

 

 

 

 

↑소남 이희수 묵서 체본

 

◇재질 : 한지에 필묵

◇크기 : 15cm × 51cm

◇시작가 : 500,000원

◇자료 : 한옥션

 

 

 

 

 

 

↑소남 이희수 기려도(少南 李喜秀 騎驢圖)

◇종이에 수묵(Ink on Paper)

◇크기(족자) : 60.5cm x 31cm

◇추 정 가 : 1,000,000 ~ 1,500,000

자료 : 아이옥션

 

 

↑소남 이희수 고사도(小南 李喜秀 高士圖)

 

◇형태 액자

◇재질-재료 : 종이에 수묵

◇크기 : 36cm x 43.5cm

◇추정가 : \2,500,000~3,500,000원

◇자료 : 마이아트옥션

 

 

↑소남 이희수의 `경지당'호 작품

 

소남 이희수(少南 李喜秀)의 유묵 가운데 처음으로 경지당(景止堂)이란 아호(雅號·초호)가 쓰인 작품이 발견되었다.

`한국서화인명사서'에 보면 소남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경주인(慶州人), 자를 지삼(芝三), 호를 소남(少南) 또는 경지당(景止堂)이라 하며 상원(祥原)에 살았다…”라고 적고 있다.

 

상원은 평남 대동강 남쪽의 산간분지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평양·중화(中和)·강동(江東) 등을 잇는 요충지로 알려졌다. 문헌에 의하면 남추북눌(南秋北訥)이라 하여 남쪽에서는 추사 김정희, 북쪽에서는 눌인 조광진(訥人 曺匡振)이라 할 만큼 명서가였던 조광진 문하에서 글씨를 배워 벌써 7세 때에 능서(能書)하였고 뒤에 그림은 산수· 사군자를 고루 잘했다고 전해온다.

 

소남의 산수도(山水圖) 가운데 대동강과 부벽루, 동해안 어촌풍경을 다룬 작품들이 발견되는 것은 그가 살아온 주변환경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한다. 이 그림은 엽서 2장 남짓한 크기인데 눈여겨볼 부분은 경지당 이희수사(景止堂李喜秀寫)라고 쓰인 관지(款識- 낙관)이다.

 

 

↑소남 이희수의 대나무와 새 작품


종이에 채색한 것이다.
중동이 잘린 늙은 대나무와 위쪽으로 길게 뻗은 싱싱한 대나무를 함께 배치하였다.
이희수는 산수화와 난초 및 대나무 그림에 능하였다고 한다. (113.5×33.7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