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조선사(朝鮮史)

조선의 교육제도

야촌(1) 2016. 7. 7. 21:30

■조선의 교육제도

 

조선시대에는 관료로서 출세할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은 무조건 과거에 합격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자연히 교육도 과거의 준비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또한 고려 말기의 고시과목이자 조선건국의 근본이념으로 채택된 유학(儒學)은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유일한 도구로서 양반계급이 감독하였다. 따라서 교육의 수혜자도 대부분 양반의 자제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들은 대개 어릴 적 서당에서 유학의 초보적인 지식을 배우고 15~16세 이전에 서울은 학당, 즉 4학(四學)에, 지방은 향교(鄕校)에 들어가서 공부하여 몇 년 뒤에 과거의 소과(小科)에 응시, 여기에 합격하면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는 자격을 얻었다.

 

당시 서울에 있는 성균관과 학당(學堂=四學)은 중앙정부에 직속되고 향교는 각 주현(州縣)에서 관할하던 관학(官學)으로서, 상호간에 상하의 연관계통이 수립대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각각 독립된 교육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즉 성균관의 입학자격은 생원·진사였지만 생원·진사는 사학이나 향교를 거치지 않아도 될 수 있었다. 또 성균관의 유생에게는 문과인 대과에 응시하는 자격과 기타 여러 가지 특전을 주었으나 그렇다고 성균관을 거쳐야만 문과의 응시 자격이 부여되었던 것은 아니었고. 일반 사람들도 실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시험은 치를 수 있었다.

 

이들 관학가운데서 성균관만은 조선 말기까지 줄곧 최고학부로서의 시설과 권위를 유지하였지만 사학과 향교는 후세에 점점 쇠퇴해져 유명무실하게 되었고 그 대신 사숙(私淑)으로서 서당(書堂) 이외에 서원(書院)이 기세를 떨치게 되었다.

 

참고문헌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