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편람(四禮便覽) 8권 4책 완질본
조선 후기 문신인 이재「李縡, 1680(숙종 6)~1746(영조 22)」가 관혼상제의 사례(四禮)에 관하여 편술한 8권 4책의 목판본 종합 참고서이다. 1844년 이재(李縡)의 증손 광정(光正) 이 간행했다.
범례와 조인영(趙寅永)의 발문에 따르면 당시의 예서들은 그 상세함과 소략함이 고르지 못해서 사대부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아, 이러한 단점을 바로잡기 위해 편찬한 것이라 한다.
저자는 범례에서, 당시 사대부들이 신봉하고 있던 〈주자가례〉나 김장생(金長生)이 편술한 〈상례비요 喪禮備要〉의 경우도 절목 등이 완전히 갖추어져 있지 않아 이용할 때 불편한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주자의 본문을 위주로 삼아 고례를 참고하고, 그밖의 여러 선유들의 학설로써 소략한 부분을 메우려 했다고 한다. 그리고 상례뿐 아니라 관례와 혼례도 첨가하여 참고하기에 편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권1은 관례, 권2는 혼례, 권3~8은 상례로서 전체적으로 상례에 주된 비중을 둔 것이 특징인데 이것은 당시 상례가 절차와 형식에 있어 가장 비중이 컸던 형편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예론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조선 후기에 집권 노론 계통의 산림으로 추앙받았던 인물이 직접 편찬한 예서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규장각·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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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편람(四禮便覽)의 책 머리에 실려 있는 凡例에 의하면,
"古今의 禮書가 상략(詳略 : 상세함과 간략함)이 같지 아니하나 세밀하면 번잡함에 흘러가고 소략(疎略)하면 簡缺의 폐(弊)가 생긴다. 《朱子家禮》는 古今을 通하여 쓰는 것이나 그 細節과 條目 중에는 疎略한 것이 있으므로 沙溪 金長生은 喪禮와 祭禮에 대하여 家禮를 주로 하고 제가설(諸家說)을 참증(參證)하여 《喪禮備要》를 지었으나 그것도 완비되지는 못했으므로 나는 그 備要의 예에 의하여 家禮 본문을 주로 하고 先儒說을 參酌 考訂하여 闕略된 것을 보충하고 또 冠禮와 婚禮를 첨가하여 이 책을 마련하였다"
라고 하여 그 경위를 밝히고 있다. 또 雲谷 趙寅永이 쓴 이 책 跋文에도 역시 이상과 같은 내용의 뜻으로 이 책을 편저한 경위를 서술하였다. 著者 도암(陶菴) 이재(李縡,1680∼1746)의 字는 희향(熙鄕)이고, 本貫은 우봉(牛峯), 약관(弱冠) 에 학예가 거의 완성되어 謁聖文科에 급제하여 刑曹參判, 漢城府尹과 弘文·藝文 兩館 大提學을 거쳐 工曹判書, 議政府左參贊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의 仲父 李晩成이 壬寅獄事에 걸려서 옥사하게 되니 縡는 晩成의 장례 후 강원도 인제 산속에 들어가서 경학과 예설(禮說)로 날을 보내고 정계에서 물러났다. 뒤에 晩成이 복작(復爵)이 되고 縡는 疏를 올려 反對黨을 징치(懲治 : 징계하여 다스림)하려 하여 당시 老論의 종주가 되었다.
詩文集 및 많은 著書를 남긴 著者는 특히 朱子學에 대하여 심오한 조예가 있고 또 禮說에 더욱 정통하였으므로 이 책의 編著에 있어서 그 이론적 근저가 명확하고 규모가 주도 치밀 함이 장구상(章句上)에 약동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제1권 : 冠禮와 계례(笄禮 : 15세가 된 여자 또는 약혼한 여자가 올리는 성인 의식을 이르던 말]로 남·녀의 성인의식을 정한 것이다. 남녀가 20歲가 되면 총각차림의 두발을 끌어 올려 상투를 짜고서 빈(賓)이라는 주례역을 모시고 三加禮를 행하여 의관을 정비하고 축사(祝辭)를 받고 초례(醮禮 : 혼인을 지내는 예식)와 字를 命하는 의식을 거치고 사당과 존장·친지에 알현(謁見)하는 모든 의식이다.
여자의 계례(笄禮)는 冠禮에 비하여 조금 간략하나 대략 冠禮와 비슷한 절차이다.
책머리에는 각종 도식과 衣制 冠制의 그림이 첨부되어 있다. 제2권 : 혼례(婚禮)로서 의혼(議昏), 납채(納采), 납폐(納幣 : 혼인때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보내는 예물), 親迎(친영) 등의 순서로 서술되어 있고 卷頭에는 견구고도(見舅姑圖 : 시부모를 뵙는 그림), 염의도(袡衣圖 : 여성이 시집갈 때 입는 옷의 그림), 대도(帶圖 : 띠의 그림), 혼가설위도(婚家設位圖), 초녀례도(醮女禮圖 : 신부가 시집가서 잘 지내도록 술을 내려 타이르는 예의 그림) 등이 있다.
제3권 : 상례(喪禮) 一.초종(初終 : 초상이 난 뒤로부터 졸곡까지의 장례절차), 습(襲 : 시신을 씻기고 수의를 입히는 절차), 소렴(小斂), 대렴(大斂)의 순으로 되어, 절명한 후 입관하기까지의 절차를 정하였다.
습위치도(襲位置圖)와 명정(銘旌 : 죽은 사람의 관직과 성씨 따위를 적은 깃발), 영상[靈牀 : 초상(喪)을 치를 때, 대렴(大殮)한 뒤 송장을 두는 곳], 의금(衣衾 : 옷과 이부자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 관구(棺柩 : 널) 등 기타에 대한 圖式이 앞에 실려 있다.
제4권 : 喪禮 二.성복(成服), 조(吊), 문상(聞喪)의 순으로 되어 있다. 이 복제(服制)는 역대 학자의 쟁송이 많은 점이므로 특히 정밀한 기준을 정하려고 힘썼다. 권두에는 오복인상조도(五服人相吊圖), 성복전조도(成服奠吊圖), 본종오복도(本宗五服圖), 삼부팔모도(三父八母圖) 이하 각종 服次圖와 喪服制의 圖書가 첨부되어 있다.
제5권 : 喪禮 三.치장(治葬), 천구(遷柩), 발인(發引), 급묘(及墓), 반곡(反哭) 등의 순으로 되었다. 권두에는 發引, 靈車, 方相, 상여(喪轝) 이하 葬具에 대한 각종 도식이 첨부되어 있다.
제6권 : 喪禮 四.우제(虞祭), 졸곡(卒哭), 부제(祔祭), 소상(小祥), 대상(大祥), 담제(禫祭), 길제(吉祭)의 순으로 되어 葬禮이후 종상(終喪)까지 각종 제사 절차와 변복의절(變服儀節)을 정한 것이다. 앞에는 우제(虞祭), 卒哭祭의 제찬(祭饌) 진설하는 도식과 부제(祔祭) 때 사당에 배치하는 도식이 있다.
제7권 : 喪禮 五.改葬禮를 서술하였으니 元葬地에 이변이 있어서 이장하는 경우에 쓰는 예식이다. 제8권 : 祭禮로 祠堂, 時祭, 年始祭, 忌日, 墓祭 등의 순으로 서술하였다. 앞에는 祠堂圖, 時祭圖, 卜日·陳設에 대한 도식이 먼저 실려있다.
著者는 禮典의 정칙은 이렇게 정하였으나 개개인의 物力 등을 고려하여 실정에 맞도록 시행할 것을 강조하였다. 또 이 책의 찬저(纂著) 방법에 있어서 특히 다음과 같은 엄격한 체제를 정하였으니 《朱子家禮》의 正文은 大字로 쓰고 다른 禮書에서 인용한 것은 小字를 쓰고 家禮本註는 한 號수씩 낮추어서 大字로 쓰고 다른 글에서 인용한 注釋은 細字雙行으로 쓰고 또 근대의 다른 禮說들을 인용 참고한 것은 別行에 올려서 2號를 낮추어서 雙行으로 쓰고 저자 자신의 의견은 「안(按)」자를 머리에 붙여서 다른 行에 3號 낮추어서 雙行의 細字로 실었다.
이 같은 저자의 의견이 冠禮에 11, 婚禮에 6, 喪禮에 100, 祭禮에 19항목이 부기되어 있다. 이것으로 저자의 주도면밀한 용의를 엿볼 수 있다. 다만 유감 되는 것은 「범례」에서 각권 도식 밑에 禮式解說과 別卷으로 便覽類會라는 것을 만들어 붙였다 하였는데 지금 전하지 않는 점이다.
이 책은 저자의 손자 李采(號 華泉)가 다시 교정하여 定本을 마련하였고, 또 그의 아들 光文(號 小華)이 1844년(憲宗 10)에 水原留守로 있으면서 정교한 版木을 彫成하여 印出한 것이 現 이 本의 8권 4책인 것이다.
書名 그대로 便覽式으로 우리나라 일반가정의 생활의식에 동화하여 온 것이므로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널리 유포되어 있고, 뒤에 黃泌秀, 池松旭의 增補本 까지 나오게 되었으나 지금은 생활의 현대화에 따라서 이같이 과도한 예법이 점차 도태되고 있으나,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생활양상, 민속, 제도, 친족관계, 습관들을 연구하는 자료로서는 가장 진중한 전적(典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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