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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언재기(景彦齋記)

야촌(1) 2016. 5. 22. 16:23

■ 경언재기(景彦齋記)

 

우리영남(嶺南) 고령군은 본래부터 명승지(名勝地)라 일컬어왔다. 물은 대가천(大伽川)이 안고 흐르며, 산(山)은 웅장한 가야산(伽倻山)이 있고, 서(西)쪽엔 만대산(萬岱山)이 우뚝 솥아 그 아래 산맥(山脈)이 다시 동(東)으로 향하여 일국(一局)을 형성하니 이곳이 박곡리(璞谷里)로 즉 김녕김씨(金寧金氏)가 대대로 살고 있는 곳이다.

 

골짜기가 깊숙하고 재실(齋室)이 높고 우뚝하니 이름하여 경언재(景彦齋)라고 하였다. 누구를 위하여 지었는가? 옛 처사(處士) 김녕김씨(金寧金氏) 휘(諱) 광준(光峻), 자(字) 준팔(峻八), 호(號) 언곡(彦谷)은 장릉(莊陵-단종의 능) 순신(純臣) 충의공(忠毅公) 백촌(白村)선생의 구(九)세손이다.

 

공(公)이 일찍이 언양(彦陽)으로부터 이곳에 이거(移居)하여 여기서 늙고 은둔하셨다. 공은 대대로 벼슬이 높은 가문(家門)으로 영화(榮華)의 길을 거절하고 임천(林泉)에 몸을 의탁하여 문학(文學)을 숭상하고 효우(孝友)를 닦으셨으며, 경독(耕讀)을 업(業)으로 삼고, 어초(魚樵-고기를 잡고 땔나무를 하고)를 즐기시니 사람들이 칭찬하기를 「성세일민(聖世逸民)이요. 임하처사(林下處士)」라고 하였다.

 

좌우의 산봉우리가 수려하고 소나무가 울창하여 수리(數里)에 둘러있으니, 길가는 사람들이 바라보고 모두 찬탄(贊嘆)하면서 「이곳이 김녕김씨(金寧金氏)의 선롱(先隴)이다」고 하였다. 년전(年前)에 주손(胄孫-맏손자) 연조(淵祚)가 그의 종숙(從叔) 석만(錫萬)씨와 성의(誠意)를 다하여 선영(先塋)에 석물(石物)을 구비(具備)하니 향인(鄕人)들의 칭송이 차자하였다.

 

공(公)이 몰하신 후 수백년(數百年)이 되었으나 아직까지 추모(追慕)할 재각(齋閣)이 없어 자손들이 영축(營築)하려한지가 오래되었다. 이제 증손(曾孫)과 그 종숙(從叔)이 많은 재력(財力)을 부담하고 종친(宗親)에게 묻고 의논(議論)하여 용대(龍大)와 영식(榮植)에게 감독을 맡겨 여러해 동안 미루어오던 일을 짧은 시일(時日)에 성취하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금년 봄에 준공(竣工)을 하고 후손 무기(武己)가 내게 기문(記文)을 써달라고 하니 미천하고 용렬한 사람이 어찌 감히 대가(大家)의 재실(齋室)에 글을 쓸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 듣고 옳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아름답다 선조(先祖)를 위하여 비(碑)를 세우고 재실을 건축함이여」그 성의(誠意)에 감동하여 삼가 일언(一言)을 고(告)하노니 경언(景彦)으로 재호(齋號)를 지은 의의(意義)가 심히 크도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무릇 효자(孝子)는 선인(先人)의 뜻을 잘 이으며, 선인의 일을 잘 기술(記述)한자라」고 하시니 선조(先祖)를 추모하는 정성과 효(孝)를 하는 도리가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는가!

 

또 옥제(屋制)와 동우(棟宇)가 당당하고 규모가 세밀하여 검박하면서도 고루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아니하니 유가(儒家)의 고제(古制)를 그대로 본받아 지은 것이다.

 

정화문(正和門)을 통하여 들어가면 풍화일장(風和日長)한 때에 종족이 모두모여 효제(孝悌)와 돈목(敦睦)을 익히고 토론하며 경사(經史)와 예의(禮義)를 담론(談論)하여 성현(聖賢)의 유모(遺模)를 완색(玩索)하고 농사짓는 이야기와 풍월(風月)을 읊으면서 전가(田家)의 즐거움을 삼았다.

 

혹 거문고를 타며 바둑을 두고 혹은 술잔을 기울이면서 울적한 회포를 풀고 각각 그 락(樂)을 다하여 화기(和氣)와 춘광(春光)이 멀고 가까운 화수(花樹)에마저 비치면 스스로 일가(一家)의 원림(園林)이 될 것이니 어찌 낙양(洛陽) 사대부(士大夫)의 조망(眺望)에 양보하겠는가!

 

또 후원의 원금(猿禽)과 전계(前溪)의 어조(魚鳥)와 봄 강 언덕의 화류(花柳)와 가을 하늘의 노을과 기러기는 이 재실(齋室)의 外華가 아닐 수 없다. 다만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의 임관(臨觀)의 미(美)가 재실(齋室)의 아름다움과 상관할바가 아니다.

 

다만 후손들이 금인(今人)의 뜻을 이어받는 것이 금인이 고인(古人)을 이어 받는 것 같이 하여 대대로 그 아름다움을 이어가면 김씨(金氏)의 家門이 어찌 창대하지 않겠는가!? 힘쓸지어다.

 

경오(庚午,1990년) 동지절(冬至節)

순천 김형원 근기(順天 金亨遠 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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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풀이]

 

◈성세일민(聖世逸民) : 세속을 피해서 마음 편히 사는 사람을 일컫는 말

◈임하처사(林下處士) : 선비가 벼슬을 그만두고 은퇴하여 지내는 곳.

◈선롱(先隴) : 선대의 언덕. 땅

◈년전(年前) : 여러해 전.

◈종숙(從叔) : 아버지의 4촌 형제, 5촌 아저씨.

◈옥제(屋制) : 집의 양식에 관한 제도

◈동우(棟宇) : 집의 마룻대와 추녀 끝

◈효제(孝悌) :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

◈화수(花樹) : 꽃이 피는 나무.

◈원림(園林) : 자연에 약간의 인공을 가하여 자신의 생활 공간으로 삼은 것.

◈외화(外華) : 외관의 화려한 차림세.

◈소인묵객(騷人墨客) : 詩文(시문)과 書畵(서화)를 하는 풍류객.

◈금인(今人) : 지금 세상의 사람.

 

 

▲경언재(景彦齋) 편액

 

▲경언재(景彦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