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이상설보도자료

보재선생 순국99주기「추모사」

야촌(1) 2016. 4. 20. 03:14

추모사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오늘 공사 다망하신데도 불구하시고 전국 각지에서 이렇게 많이 참석해주셔서 행사준비의 임원으로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이자리에 함께한 것은 보재선생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재조명을 통하여 민족정체성을 확보하고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함양하며, 그분들의 위업을 선양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보재 이상설선생께서는 1894년(고종 31) 조선왕조의 마지막 식년문과에 급제하시고 초대 성균관관장, 학부와 법부협판, 의정부 참찬 등을 두루 역임하셨습니다. 국난의 위기에 처함을 좌시할 수 없었던 선생은 국권수호를 위하여, 살신성인하신 민족의 선각자이시며, 우리의 정신적인 스승이셨습니다.

 

향년 48세의 길지 않은 일생을 시종 독립운동으로 일관하셨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가셨으며, 어느 누구와도 만나시고 영국, 미국, 불란서, 독일, 러시아와 네델란드 헤이그를 순방하시고, 연해주와 만주를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외교활동과 의병활동 그리고 애국 계몽운동을 펼치시며, ‘조국독립운동의 기지’도 개척하셨습니다.

특히 선생께서는 일제의 황무지개척권 요구를 무산시켰고, ‘을사늑약’ 파기와 을사오적 처단을 주장하셨으며, ‘항일민족교육의 요람인 서전서숙을 자비로 세우셨습니다.

 

만국평화회의가 헤이그에서 개최될 때, 정사로 파견되어 일제에 의해 강압적으로 체결된 조약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한편, 한국독립의 당위성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리는 외교활동을 펼치고, 만주와 노령의 민족지도자들을 모아 ‘성명회’ 선언문을 발표하시는 등, 일제의 강제 병탄에 격렬히 맞섰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연해주 등에 ‘독립군운동기지’를 건설하시고, 최초의 망명정부인 ‘대한광복군 정부’를 세워 일제 강점으로 끊어진 ‘민족정권의 맥’을 잇고자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 바치신 선각자셨습니다. 다시금 선생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재조명을 통하여 우리는 만족정체성을 확보하는데,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제99주기 추모식과 내년 순국 100주년준비에 애쓰시는 진청군청 관계자 및 사단법인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와 「보재 이상설선생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관계자여러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4월 22일

(사)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 이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