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선현들의 묘.

목은 이색선생 묘

야촌(1) 2011. 11. 13. 17:00

↑목은 이색선생 묘

 

 

 

↑목은 이색묘역 뒷편에서 내려다 본 모습(묘역 하단 좌측에 보이는 건물은 문헌서원이며, 부인 묘는 서원 우

    측에 위치) 고려 후기의 문인이며 학자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 선생의 묘이다.

 

  선생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문헌서원 입구에 있는 재실                                      ↑서원 앞에 위치한 이색선생 신도비

 

↑묘역 입구에 세워진 양경공 이종선 묘갈                   ↑문헌서원 좌측을 지나면 목은 묘역이 보입니다.   

 

↑앞의 봉분은 목은의 셋째 아들인 양경공(良景公) 이종선(李種善) 묘이고, 뒤의 봉분이 이색선생 묘역입니다. 

 

↑목은 이색선생 묘표

 

↑이색선생 묘역 내 석물 모습

 

문헌서원 우측 산자락으로 오르면 이색선생 부인 묘가 나타납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2층누각

으로된 6칸의 강당, 4칸의 진수당(進修當), 3칸의 목은영당(牧隱影堂), 5칸의 재실(齋室), 3칸의 전사청, 3칸의

수호사(守護舍),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 목은선생 신도비, 이종덕 효행비각 등이 있다. 

 

 

↑측면에서 바라 본 이색선생 부인 안동권씨 묘역.

 



↑이색선생 부인 안동권씨 묘.

 

사우에는 이색, 이곡을 주벽(主壁)으로 이종학, 이자, 이개, 이종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재실인 진수당은 유

림의 화합 및 학문 토론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전사청은 제구(祭具)를 보관하는 장소로 수호사는 관리인의 숙소로

사용하며, 목은 영당에는 이색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목은의 조부 이자성(李自成) 묘.

 

 

●문헌서원(충남문화재자료 제125호)

 

문헌서원(文獻書院)은 가정 이곡(1298∼1351)과 목은 이색(1328∼1396)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곡은 고려 후기 학자로서 이색의 아버지이다.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여 실력을 인정받았고, 문명을 떨쳤다. 문헌서원은 선조 27년(1594)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뒤 광해군 2년(1610)에 한산고촌으로 옮겨 다시 세웠다. 이듬해에 나라에서 문헌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고 인재 이종학·음애 이자·배옥헌 이개 등을 추가로 모시게 되었다. 고종 8년(1871)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

 

그 후에도 처음 문헌서원이 있던 곳에 단(壇)을 만들고 분향해 오다가 1969년 지금 있는 자리에 다시 짓고 문양공 이종덕 한 분을 더하여 여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이색선생신도비(문화재자료 제127호)

 

이 비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목은(牧隱) 이색 선생을 기리고 있다. 

비는 낮은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며, 비문에는 ‘선생은 후에 죄를 얻어 폐출되었으나, 하늘과 땅만이 그의 고결한 마음을 알리라’라는 내용을 새겨 놓았다.

세종 15년(1433)에 처음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잃어버리고, 현종 7년(1666) 후손들이 다시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문화재청 사진(원 신도비는 영당 밖에 있고, 좌측 사진은 근래에 새로 세운 신도비로 영당 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정과 목은선생 부자분의 문집 목판(충남 유형문화재 제77호)

 

▲문화재청 사진

 

목은 이색(牧隱 李穡,1328∼1396)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곡은 이제현의 문인으로 도첨의 찬성사를 지내고 한산군으로 봉해졌다. 

이색은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성리학자로서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가 망할 때 태조 이성계에 굴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삼은(三隱)으로 불린다. 

현존하는 목판은 975판이 있으며, 문헌서원 장판각에 보존되어 있다.  
이 목판은 한국문화사 뿐만 아니라 국문학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목은 이색선생 영정(경남유형문화재 제232호)

 

▲목은 이색 영정 / 문화재청 사진

 

목은 이색(1328∼1396) 선생의 초상화로, 가로 60㎝, 세로 120㎝ 크기의 엷은 채색화이다. 이색은 삼은(三隱) 중 한 사람으로, 14세에 성균시에 합격하였고, 공민왕 16년(1367)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학문과 불교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정치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화폭 왼쪽 윗 부분에 조선 태종 4년(1404)에 제작된 이래 영조 42년(1766)에 다시 그렸다는 기록을 적어 두고, 오른쪽 위쪽으로는 선생을 찬양한 글을 기록해 놓았다.
 
조선 전기의 초상화 기법이 잘 나타난 있는 작품으로, 강원도 원주 용화산 고자암에 보존하고 있던 것을, 광무 10년(1906) 중이리 소재의 경모당으로 옮겼다가 그곳이 하동댐 건설로 수몰됨에 따라 이곳 금남사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이색선생 묘역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