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선현들의 묘.

권율(權慄) 장군 묘

야촌(1) 2015. 8. 12. 21:19

■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장군묘

 

1537(중종 32)∼1599(선조 32). 조선 중기의 문신·명장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모악(暮嶽). 도첨의(都僉議) 보(溥)의 9세 손으로, 할아버지는 강화부사 적(勣), 아버지는 영의정 철(轍), 어머니는 적순부위(迪順副尉) 조승현(曺承晛)의 딸 정경부인 창령조씨이다. 이항복(李恒福)의 장인이다.

 

422년 전,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2월 12일, 권율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크게 이긴 날입니다. 3만여명의 왜군은 행주산성을 포위하고 9차례의 맹공격을 해왔지만 권율장군이 이끄는 1만 여명의 군사는 왜군을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부녀자들도 치마에 돌을 담아 나르며 전투를 승리로 이끌도록 도와 나중에 행주치마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소재지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산 168-1

 

▲정면에서 바라본 묘지원경

 

 ▲권율장군의 신도비각

 

▲신도비각에 있는 원래의 신도비가 풍우에 글자 마멸이 심해 1847년(헌종 13) 후손들이 새로 세운 신도비입니다.

 

앞의 묘가 권율장군 묘이고, 위쪽 중간의 묘는 양주 목사를 지낸 형인 권순(1536~1606)의 묘이고, 제일 윗쪽 상단

의 묘가 영의정을 역임한 아버지  권철(1503~1578)묘 입니다.

 

권율 장군의 묘를 중심으로 좌우에 전부인 창녕조씨와 후부인 죽산박씨가 안장되어 있으며, 묘앞에는 묘비 , 상석, 

향로석, 동자석 1쌍이 있고,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 1쌍이 있습니다. 권율장군의 묘는 경기기념물 제2호로 1972

에 지정되었습니다.

 

 

권율장군 묘갈/개미실 사랑방

 

▲묘역의 중앙에 위치한 권율장군의 형 권순「權恂,1536(중종 31)~1606(선조 39)」과 정부인 파평윤씨

    와의 합장 묘입니다.

 

42세 때 문음으로 사산감역(四山監役)이 되고, 양주목사가 되었으나 1593년 병을 사칭하고 감사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헌부의 탄핵으로 파직 당하였다. 그 뒤 1598년 명나라 사신의 접반사가 되었고, 이듬해 접반의 공로로 품계를 1등급 올려받게 되었다.

 

1601년 파주목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나이가 많아 일을 해낼 수 없다는 이유로 체직되었다. 같은해 다시 여주목사를 제수 받았으나 같은 이유로 체직되었다. 뒤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 만년에는 강화에 거처하였다. 우참찬에 추증되었다.

 

 

▲형 권순의 묘에사 정면을 바라본 후경입니다.

 

▲묘역의 상단에 위치하며 좌측이 아버지 권철의 묘이고 우측이 어머니 정경부인 창녕조씨 묘입니다,

    봉분이 둥글지 않고 4각인 것은 고려시대의 장묘법에 따른것입니다.

 

●권철(權轍)

자는 경유(景由), 호는 쌍취헌(雙翠軒). 마(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교(僑)이고, 아버지는 강화부사 적(勣)이며,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탁(擢)의 딸이다. 율(慄)의 아버지이다. 1567년(선조 즉위년)에는 좌의정, 1571년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시호는 강정(康定)이다.

 

 

▲영의정 권철의 묘에서 바라본 후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