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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야촌(1) 2015. 7. 8. 21:00

'배신의 정치'를 '헌법 1조 1항'으로 돌려주다

[해설] '법과 원칙, 정의' 강조하며 박 대통령·친박 겨냥오마이뉴스 | 구영식 | 입력 2015.07.08. 16:45 | 수정 2015.07.08. 17:42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 여야 협상을 이끌었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꼭 찍었다.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입니다.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대변자이자 자기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다"라고도 했다. 이는 마치 자신에게 밉보인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원내대표를 낙선시켜야 한다는 주문으로 들릴 정도로 격한 발언이었다.

 

 

▲유승민과 박근혜 다른 표정 (사진 왼쪽)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일 오후 국회 정론

관에서 "의원총회 뜻을 받아들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다"며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오른쪽)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과의 오찬

에서 박수치고 있다. ⓒ 유성호/연합뉴스

 

결국 박 대통령이 주문한 대로 유 원내대표는 낙마했다. 

그는 8일 오후 1시 30분께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내대표직를 사퇴했다. 

 

박 대통령에 의해 "배신의 정치"로 찍힌 지 12일 만이었다. 

박 대통령을 위시한 친박세력의 '유승민 축출작전'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헌법을 어기거나 무시한 쪽은 누구인가?'를 묻다 먼저 유 원내대표는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고된 나날을 살아가시는 국민 여러분께 저희 새누리당이 희망을 드리지 못하고, 저의 거취문제를 둘러싼 혼란으로 큰 실망을 드린 점은 누구보다 저의 책임이 크다"라며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2000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던 유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로 출근하면서 스스로에게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지난 16년간 매일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유 원내대표는 "정치는 현실에 발을 딛고 가슴으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라며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아무리 욕을 먹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정치를 해왔다"라고 회고했다. 이어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을 위시한 당내 친박세력들의 사퇴 공세에도 물러나지 않고 버텼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라며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과 당내 친박세력을 겨냥한 대목으로 읽힌다. 

 

여야가 협상을 통해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이를 빌미로 자신에게 사퇴하라고 압박한 친박세력이 "법과 원칙"을 어겼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의총 뜻 받들어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힌 뒤 굳은 표정으로 나서고 있다. ⓒ 남소연

 

유 원내대표는 목소리를 높여 "저는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라며 "오늘이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한 헌법 제11항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이를 통해 '헌법을 어기거나 무시한 쪽'이 어디인지를 묻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2주간 저의 미련한 고집이 법과 원칙, 정의를 구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저는 그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다"라고 덧붙였다.

 

"보수의 새로운 지평" 꿈이 잠시 좌절됐지만...

 

유 원내대표는 지난 48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자로 나서 "새누리당은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중산층의 편에 서겠다"라고 선언했다. 뒤틀린 보수가 판치는 한국 사회에서 "보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도 "우리나라의 보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 명연설이었다"라고 호평했다.

 

여당 안에서 "보수의 새로운 지평"을 관철하려고 했던 유 원내대표의 원대한 꿈은 잠시 좌절됐다. 그래서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면서 아쉬움이 있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 4월 국회 연설에서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

 

제가 꿈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던 약속도 아직 지키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는 "그러나 더 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오랜 정치적 소신인 '경제정책 좌클릭'을 위해서 당내 노선투쟁이라도 벌이겠다는 각오다.

 

'보수의 새로운 지평'을 꿈꾸었던 유 원내대표는 명백한 사유 없이 축출당하듯 물러났다. 박 대통령도 '사퇴하라'고 압박했던 친박세력도 그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얘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퇴해야 할 만큼 잘못한 것이 없어서 할 얘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박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정서법'만이 작동했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라고 쓰고 '축출'이라고 읽는다)는 새누리당 안에서 합리적 보수의 설 자리가 없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김무성 대표까지 나서 박 대통령의 주문을 관철한 여당은 '청와대 출장소'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이제 당사에 걸려 있었던 '새누리당 혁신하면 대한민국이 혁신한다'는 현수막을 내려야 할 때가 됐다.

 

편집손병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