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익재이제현선생

익재집 편찬 및 간행 요약

야촌(1) 2015. 3. 17. 00:43

익재집 편찬 및 간행 요약

 

익재집(益齋集)은 저자 이제현[李齊賢, 1287년(충렬왕 13)∼1367년(공민왕 16)]의 생전에 막내아들 이창로(李彰路)와 장손 이보림(李寶林)이 편집하고 이색(李穡)의 서(序)를 받아 1363년(공민왕 12)에 처음 간행하였다초간본》. 그러나 이 초간본은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

 

그 후 1432년(세종 14) 세종(世宗)의 명(命)에 의하여 나라에서《역옹패설(櫟翁稗說)》과 함께 강원도 원주(原州)에서 간행하였다중간본》. 당시 김빈(金鑌)의 발문에 의하면 '간행기구 미면결오(刊行旣久 未免缺誤)' 라고 하여 초간 사실을 추인(追認)하고 있는데 이때, 아울러 초간본에 빠지고 잘못된 부분의 일부를 바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 중간본은 현재 일본봉좌문고 조선목록(日本 蓬左文庫 朝鮮目錄)에 보이는 10행 17자의(四周雙邊, 匡郭 17.5~18.7×13.5㎝) 板本이 아닌가 여겨진다.[청분실서목淸芬室書目]

 

1600년(선조 33)에는 11대 손인 경주부윤 이시발(李時發)이 경주에서 다시 중간하였다삼간본》.

이때 「익재난고(益齋亂藁)」10권,「역옹패설(櫟翁稗說)」4권과 아울러 족조(族祖) 이광윤[李光胤-진사 잠(潛)의 차자로 서계(西溪) 덕윤(得胤)의 아우]이 가장하고 있던 「효행록(孝行錄)」 1권까지 함께 간행하였다.

 

이시발(李時發)은 난고(亂藁)와 패설(稗說)ㆍ효행록(孝行錄) 3부를 모두 자신이 직접 교수(校讎)하였을 뿐아니라, 효행록(孝行錄)의 경우는 여가에 선사(繕寫-잘못을 바로잡아 다시 고쳐 베낌)까지 담당하였다. 또한 구본(舊本)에 빠져있던 시문(詩文)의 일부를 수집(收輯)하여 권말에 붙이고, 구본에 비하여 자체(字體) 또한 확대하여 간행하였다.

 

계유(癸酉) 1693년(숙종 19)에는 후손 이세석(李世碩)이 찬(撰)한 저자의 년보(年譜)를 붙여, 경주부윤(慶州府尹) 허영(許穎)이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으며《사간본》.

 

1698년(숙종 24)에는 후손 이인엽(李寅燁-이시발의 손자로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역임)이 황해도 관찰사로 재임중 해주(海州)에서 간행하였다《오간본》. 이 본은 권말에 재사당 이원(再思堂 李黿(1471년 추정)∼1504년(연산군 10)의 「재사당산고(再思堂散藁)」가 부집(附集)되어 있으며 현재 서울에 사는 발행인 이인엽의 10대손 이정희(李晶熙)씨와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D1-A401A)에 소장되어 있다.

 

그후 1814년(순조 14) 년보(年譜)에 사실(事實)을 추가하고 습유(拾遺)를 첨록(添錄)하여 경주에서 보판(補板) 간행하였으며《육간본》, 병인(丙寅) 1923년 에는 19대손 이규석(李圭錫)이 하겸진(河謙鎭)의 서(序)를 받아 연활자(鉛活字)로 안동(安東) 노림재(魯林齋)에서 간행하였고《칠간본》. 1960년에는 대전(大田) 흥문사(興文社)에서 4책 석인본(石印本)으로 중간하였다.팔간본

 

1979년과 1980년에는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아래의 《구간본》을 국역으로 간행하였고,

제1권 1979년 12월 30일 /발행자 :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

제2권 1980년 12월 30일 /발행자 :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

위의 제1권 및 2권 중판 1985년 2월 28일/발행자 :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

 

1999년 5월 15일에는 /발행인 : 이상현(李相賢)이 익재집 2권을 국역으로 발행하였다.《십간본

 

지금까지 익재집(益齋集)은 중국에서 4번 일본에서 1번을 포함하여 총 15번이나 간행되었는데, 현재 삼간(三刊) 이후의 국내판본(國內板本)은 후쇄(後刷)와 보판(補板)을 거쳐 널리 보급되어 있으나 해주에서 간행된 오간본만은 전본(傳本)이 희귀한 편이다.

 

2008年 8月 16日

執筆者 : 李在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