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음악산책(월드)

"메기의 추억(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

야촌(1) 2015. 3. 18. 19:24

 

메기의 추억(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

노래 : Maggie- Ann Breen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

The violets were scenting the woods, Maggie

Displaying the charms to the breeze

제비꽃 내음이 숲속에서 풍겨오고, 그 향기가 산들바람에 실려 부드럽게 다가왔어요, 메기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처음 고백했을 때,

메기 당신도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했지요.

 

The chestnut bloomed green through the glades, Maggie,

A robin sang loud from a tree

숲 속의 빈 터에서 밤꽃이 푸르게 피어나고

나무에서 개똥지빠귀새가 크게 노래 불렀어요, 메기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처음 고백했을 때, 매기

당신도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했지요.

 

The golden-robed daffodils shone, Maggie

And danced with the leaves on the lea

늘어선 황금빛 수선화가 환하게 빛나고

초원 위에선 나뭇잎들이 춤추고 있었지요, 메기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처음 고백했을 때, 메기

당신도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했지요.

 

The birds in the trees sang a song, Maggie

Of happier transports to be

다가올 더 행복한 나날들을 위해

나무 위에서 새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죠, 메기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처음 고백했을 때, 메기

당신도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했지요.

 

Our dreams they have never come true, Maggie

Our fond hopes were never meant to be

우리의 꿈들은 결코 실현될 수 없었고우리가 바라던 희망들도 결코 이루어지지 못했어요, 메기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처음 고백했을 때, 메기

당신도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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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번안곡"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않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 다 메기야 희미한 옛 생각

동산수풀 없어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소리 그쳤다 메기 내사랑하는 메기야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않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 다 메기야 희미한 옛 생각

지금 우리 늙어지고 메기머린 백발이 다되었네.

옛날의 노래를 부르자 메기 내사랑하는 메기야

내사랑하는 메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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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란 영국 상류사회의 귀족 집 딸에게 흔히 지어주는 여자의 이름 마가렛(Margaret)의 애칭이다. 마가렛 공주, 마가렛 공작부인과 같이...

 

그 이름의 약칭으로 메기(Maggie)라고 하기도 하고 또한 전혀 다른 발음이 나는 리타(Rita), 또는 패기(Peggy)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 뉴욕주 서북쪽 끝머리와 카나다 온타리오가 만나는 곳에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다. 이 폭포는 에이레 호수물이 이 협곡을 지나며 지층이 푹 꺼진 낭떠러지를 지나면서 큰 폭포를 이룬 곳으로 폭포에서 떨어진 물줄기는 온타리오 호수로 흘러가게 되는데 카나다 쪽으로 첫 번째 마주치는 읍내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해밀톤(Hamilton)이다.

 

그런데 제자 중 마가렛 클라크(Margaret Clark)라는 예쁜 아가씨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둘이는 나이아가라 폭포물이 온타리오 호수로 흘러들어오는 언덕의, 양지바른 금잔디에 나란히 앉아 푸른 호수를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었다.

 

그리고는 그녀가 졸업을 하자 화촉을 밝히었다. 그 후 죠지 존슨 교사는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브랜드 학교로 전근하게 되어 그곳에서 달콤한 신혼생활을 즐겼다. 그러나 신부 마가렛 클라크는 폐결핵을 앓게 되어 결혼생활 1년도 안되어 옥동자를 낳고 세상과 이별하게 된다.

 

그 당시 서양 사람들은 폐결핵, 폐렴으로 죽는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영국소설 “폭풍의 언덕”의 여자 주인공도 그랬고 프랑스 소설 “춘희(椿姬)”의 여주인공도 이 병으로 사랑하는 이를 두고 눈을 감아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그토록 사랑하던 제자와 결혼도 하고 그 단꿈이 채 깨지도 않은 젊은 날에 아내를 잃게 된 죠지 존슨은 지난날 사랑을 속삭이던 그 고향의 옛 언덕에 아내를 묻어 주려고 관을 화물열차에 싣고 어린 아이를 안고 객차에 올라 고향 해밀톤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런데 품에 안고 있던 아기가 엄마를 찾는지 자꾸 소리내어 울고 있으니까 다른 승객들에게 미안해서 정성을 다해 아이를 달래 보았으나 끝내 울음을 그치지 않고 계속 소리 내어 울고만 있었다.  그래서 죠지 존슨은 아이를 번쩍 안고 일어서서는 같은 객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에게 소리쳐 사과 말을 하였다.

 

“이 아이가 엄마를 찾으러 이처럼 울고 있는데 이 아기 업마는 지금 뒷칸 화물열차의 관에실려 그곳에 누워 있습니다. 엄마가 세상 떠난 줄도 모르고 제어미를 찾는 모양인데 여러분 조금만 참아 주세요. 저는 제 아내를 고향의 언덕에 묻어 주려고 아내의 관과 함께 고향으로 향하고 있는 중입니다.

 

승객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객차안의 모든 승객들은 숙연해 졌고 눈물짓는 이도 있었다. 이때 이 객차 안에는 어느 신문기자가 타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지방신문에 수필로 써서 보도하게 되어 많은 독자들이 가슴 메이게 슬퍼하였다고 한다.

 

죠지 존슨은 아내를 잃은 다음 교편생활을 그만두고 어느 신문사에서 글도 쓰며 일한 일도 있으며 그후 학업을 계속하였다, 명문 죤 합킨스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카나다 토론토 대학의 교수가 된 시인이자 철학자였다.

 

그는 자기의 시집 첫머리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과 옛날을 회상하는 시를 써서 계제하였는데 그 시를 데트로이트에 사는 친구 제임스 버터휠드에게 곡을 부쳐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친구 제임스 버터휠드가 곡을 지어 발표한 것이 바로 이 <메기의 추억>이다. 원명은 이다.

 

이곡이 차차 알려지고 불리어 지게 되니까 미국의 어느 유명한 테너가 무대에서 부르면서 “내 사랑하는 메기야~”를 “내 사랑하는 노라(Nora)여~”하고 자기 아내 이름으로 살짝 바꿈질하여 불렀다.

 

그걸 레코드사에서는 그 가사 그대로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노라’와 앉아서 놀던 곳-”하고 취입하여 레코드를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메기의 추억> 팬들이 항의하고 반발하는 바람에 레코드회사는 그 레코드를 모두 시중에서 거두어 들였다. 만인이 애송하는 ‘메기’가 하마터면 ‘노라’로 둔갑하여 세계적으로 퍼질 번 하였다.

 

그후 영국에서 아릴랜드 출신 어느 유명한 가수가 그 노래를 불러서 한때는 영국 가요계에 랭킹 1. 2위의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게 되었고 그게 세계 각국에 퍼져 많은 세상 사람들은 그 노래가 아일랜드 민요인줄 알고 따라 불렀다.

 

사실 이 곡의 곡조는 영락없이 아일랜드 풍의 애조 어린 선율이 흐르고 있어 대다수 사람들이 아일랜드 노래인줄 알고 좋아했다.

 

그 곡의 작곡자 제임스 버터휠드는 영국에서 건너와 미국에 이주하게 된 영국계 미국인 이었고 그가 영국에서 아일랜드 풍조의 멜로디 영향을 받아 그런 가락으로 곡을 작곡하였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곡은 옛날부터 아일랜드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곡조라고~~~,

또 다른 사람들의 주장은 다르다. 사실 이 곡은 테네시 주의 어느 산골 마을에서 가사없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래되어 온 토속 민요로 아마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자기 고향에서 부르던 곡조를 미국에 이민와 향수에 젖어 흥얼거렸다는 전설이다.

 

그래서 지금도 테네시 주의 스프링타운(Springtown)에 가면 그 노래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그 가사의 지은이는 죠지 존슨이라고 새겨져 있다고 한다.

 

죠지 존슨이 지은 가사는 우리가 애창하는 우리말 가사와 좀 다르지만 필자는 우리가 즐겨 부르고 우리 귀에 익은 우리말 가사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와 같이 앉아서 놀던 곳-” 이게 더 더욱 다정하고 애처로운 느낌이 들어 이 노래 가사를 좋아하는 편이다.

 

어느 기록에 의하면 이 <메기의 추억> 우리말 가사는 1920년대 그 당시 선각자 윤치호선생이 작사 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그때 막 개화기에 눈을 뜬 한국 사람들이 어느 청춘 남녀가 뒷동산 잔디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었다 하면 온 동네가 야단법석, 시클 짝 할 정도로 큰 일로 여겼을 텐데 윤치호선생이 감히 이 진보적(?)이고 센세이숀한 가사를 그렇게 썻을 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마 일본인들이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며 자기네 정서에 맞게 일본말로 번역한 것을 한국 사람들이 다시 옮기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승만 박사가 젊어서 배제학당에 다닐 때 그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던 미국 여자선교사가 처음 들려 준 미국노래가 바로 이 <메기의 추억>이라고 한다.

 

이 여선교사가 가냘프게 불러 준 이 노래를 듣고 감명을 받았고 먼 나라 미국에 대한 동경이 더욱 생겼다고 그의 자서전에 쓰여 있다.

 

글 : 헨리 정(정영진/재미교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