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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Mary Hamilton-Joan Baez(1963)

야촌(1) 2015. 1. 7. 23:25

 

◇활동기간 : 보컬 (1950년대 ~ 2010년대)

◇생졸년 : 1941.01.09 ~ 현재 ,

◇출신국 : 미국 출생

◇데뷰년도 : 1959년ㅣ학력:보스턴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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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Hamilton -Joan Baez

 

이 노래는 미국의 여가수 Joan Baez의 1963년에 부른 'Mary Hamilton' 이라는 곡이다. 이 노래는 새롭게 창작곡이 아니라 옛 부터 전해 내려오던 구전노래를 그녀가 부른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옛날 실제 있었던 일인지 픽션 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슬픈 내용의 배경을 담고 있다.

 

노래 말의 배경인즉 16세기 스코틀랜드이다. Mary Hamilton은 스코틀랜드 여왕의 시녀였다. 그런데 왕의 눈에 들어, 사랑을 나눠 아이까지 낳게 된다. 그런데 매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아이를 죽인다. 그녀 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단두대에서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그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서술하는 것이 이 노래의 가사 배경이다.

 

Mary Hamilton-Joan Baez(1963)

 

Word is to the kitchen gone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And word is to the hall,

소문은 퍼져나갔고,

 

And word is up to Madam the Queen

마침내는 여왕의 귀까지 들려지게 되었죠.

 

And that's the worst of all,

그건 최악의 상황이었어요.

 

That Mary hamilton's born a babe to the highest Stuart of all

그 소문은 메리 해밀턴이 스튜어트왕가의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었어요.

 

"Arise, arise, Mary hamilton,

일어나라, 일어나라

 

Arise and tell to me,

일어나서 내게 말해 주려무나.

 

What thou hast done with thy wee babe

네 갓난아기를 어떻게 하였느냐?

 

I saw and heard weep by thee?"

나는 네가 우는 것을 보았단다.

 

"I put him in a tiny boat,

내가 낳은 갓난아이를 내 손으로 작은 배에 태워서

 

And cast him out to sea,

바다로 떠내려 보냈지요

 

That he might sink or he might swim,

바다에 빠져죽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살아났을지도 몰라요.

 

But he'd never come back to me."

하지만 내게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Arise, arise, Mary hamilton,

일어나거라, 일어나거라 메리 헤밀턴아.

 

Arise and come with me;

일어나 함께 가자꾸나.

 

There is a wedding in Glasgow town

글래스고우에서 결혼식이 있단다.

 

This night we'll go and see."

오늘밤 나와함께 결혼식을 보러 가자꾸나.

 

She put not on her robes of black,

나는 검정 예복을 입지도 않았고

 

Nor her robes of brown,

갈색 예복도 입지 않았어요.

 

But she put on robes of white,To ride into Glasgow town.

하지만 나는 글래스고우로 가려고 하얀 예복을 입었어요.

 

And as she rode into Glasgow town,The city for to see,

그리고 내가 결혼식을 보려고 글래스고우에 갔을 때,

 

The bailiff's wife and the provost's wife

만나는 사람들마다 탄식하며 말했어요.

 

Cried, "Ah, and alas for thee."

이 결혼식이 네 결혼식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Ah, you need not weep for me," she cried.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라고 난 울면서 말했어요.

 

"You need not weep for me;

나를 위해 울 필요 없어요.

 

For had I not slain my own wee babe

내가 낳은 갓난아기를 죽이지 않았다면

 

This death I would not dee."

내가 이렇게 죽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요.

 

"Ah, little did my mother think When first she cradled me,

내가 태어났을 때 나의 어머니는

 

The lands I was to travel in And the death I was to dee."

내가 이 나라에서 방랑만 하다가 이렇게 죽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하셨어요.

 

"Last night I washed the Queen's feet,

어젯밤 나는 여왕님의 발을 씻겨드렸죠

 

And put the gold on her hair,

머리엔 금관을 씌워드렸고요.

 

And the only reward I find for this,

하지만 그 대가로 내게 돌아 온건.

 

The gallows to be my share."

단두대에서 죽게 되는 것이었죠.

 

"Cast off, cast off my gown," she cried,

내 가운을 벗겨버리세요 라고 난 외쳤어요

 

"But let my petticoat be,

하지만 속치마는 남겨두세요

 

And tie a napkin 'round my face;

그리고 수건으로 내 얼굴을 가려주세요

 

The gallows I would not see."

단두대를 보고싶지 않아요

 

Then by and come the King himself,

그때 임금님이

 

Looked up with a pitiful eye,

바라보면서 말했어요.

 

"Come down, come down, Mary hamilton,

내려오너라, 내려오너라 메리 해밀턴아,

 

Tonight you'll dine with me."

오늘 밤 나와함께 저녁을 같이하자꾸나.

 

"Ah, hold your tongue, my sovereign liege,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존경하는 전하

 

And let your folly be;

그러시면 바보가 되실 뿐입니다.

 

For if you'd a mind to save my life

진정으로 나를 살려주시려 하셨다면

 

You'd never have shamed me here."

내가 이렇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지 않으셨을거니까요.

 

"Last night there were four Marys,

어젯밤까지는 4명의 메리가 있었는데

 

Tonight there'll be but three,

오늘밤엔 3명만 남게 되겠죠.

 

There was Mary Beaton, and Mary Seaton,

그 4명의 메리는 비이튼, 씨이튼

 

And Mary Carmichael, and me."

카마이클 그리고 바로 나 였었어요.

 

조안 샨도스 바에즈(Joan Chandos Baez)

조안 샨도스 바에즈(Joan Chandos Baez)는 미국의 여가수로 인권운동가이며 반전평화운동가이다. 그녀는 1941년 1월 9일 미국 뉴욕의 스태이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서 멕시코 출신의 알베르트 비니치오 바에즈(Albert Vinicio Baez)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조안 브리지 바에즈(Joan Bridge Baez)의 세딸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나중에 바에즈가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반전평화운동가로서 활동하게 된 데에는 반핵물리학자였던 멕시코계 아버지를 둔 가정적 환경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캘리포니아(California)에서 고등학교(Palo Alto High School)를 다닌 바에즈는 음악에 심취하여 졸업 무렵에는 자신의 노래를 녹음하여 음반회사에 보내기도 하였다.

1958년 아버지의 새로운 직장 때문에 매사추세츠로 이주한 그녀는 보스톤대학(Boston University)에 진학하지만 직업적인 가수활동을 하기 위하여 곧 중퇴하였다.

 

1959년 캠브리지(Cambridge)의 포크음악클럽인 클럽 47(Club 47)에서 정식으로 노래하기 시작한 바에즈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The Newport Folk Festival)을 통하여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1960년 포크 전문 레이블인 뱅가드(Vanguard Recording Society)와 장기계약을 맺고 음반들을 발매하였다.

 

바에즈는 1961년 뉴욕에서 밥 딜런을 만나 함께 전국순회공연을 하며 흑인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인종차별 철폐운동에 앞장서고 월남 반전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국내외에서 펼친 음악활동만큼 반전운동도 맹렬했던 그녀는 직접 반전시위에 가담하여 체포당하기도 하였다.

1968년 3월 26일 반전운동가인 데이빗 해리스(David Harris)와 결혼한 바에즈는 해리스가 양심적 병역거부로 투옥되자 우드스탁 축제(The Woodstock Festival)에 참여하는 등 반전운동에 더욱 열중하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가면서 바에즈의 활동도 변화되어 전통 포크의 모습에서 새로운 음악스타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녀의 최대 명곡인 는 새로운 음반사 A&M를 통하여 1975년 4월에 발매되었다.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못하고 대학마저 중퇴한 그녀는 평생 큰 업적을 이루었다. 바에즈는 8장의 골드앨범과 1장의 골드싱글을 기록하였다. 그래미상 후보에 6번 선정되었으며 2007년 그래미 평생공로상(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수상하였다.

 

인권과 평화운동의 공로로 2개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았고, 2개 주로부터 존 바에즈의 날(Joan Baez Day)을 지정 받는 명예를 얻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핵무기 제조에 반대하는 물리학자였으며 어머니는 희곡 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