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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인생-이덕일

야촌(1) 2009. 4. 6. 01:45

[이덕일 사랑] 권력과 인생

 

같은 집현전 학사 출신이었지만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의 사육신이 명분을 좇은 반면 정인지(鄭麟趾)와 신숙주(申叔舟)는 현실을 택했다. 현실의 승자는 당대에는 물론 후대까지 많은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조선 중기 이덕형(李德馨)은 '죽창한화(竹窓閑話)'에서 단종을 죽인 "죄를 논한다면 정인지가 으뜸이 되고 신숙주가 다음이다"라고 비난했다. '해동악부(海東樂府)'는 신숙주가 "59세로 임종할 때 한숨 쉬며, '내 인생도 마침내 여기에서 그치고 마는가'라고 탄식했으니 후회하는 마음이 싹터서 그러하였다 한다"고 전한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후회했다는 것이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해도 그들은 명분보다는 현실, 즉 권력을 택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현실을 택한 인생도 마지막 길목에 다다르면 무상을 느끼기 십상이다. 사육신을 죽인 세조도 마찬가지였다.

 

세조는 죽기 넉 달 전인 재위 14년(1468) 5월, "내가 잠저로부터 일어나 창업의 임금이 되어 사람을 죽이고 형벌한 것이 많았으니 어찌 한 가지 일이라도 원망을 취함이 없었겠느냐?"라면서 "'주역(周易)'에 '소정(小貞)은 길(吉)하고 대정(大貞)은 흉(凶)하다'고 하였다"고 저승길 두려움을 고백했다.

 

 '주역' 둔괘(屯卦) 구오(九五)의 이 효사(爻辭)에 대해 왕필(王弼)은 '주역주(周易注)'에서 "작은 일에서는 곧으면 길하지만 큰일에는 곧아도 흉하다"라고 설명했다.


세조는 죽음을 앞두고 눈물 흘리는 일도 잦았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권력 무상을 깨닫는 것이 반복되는 인간과 권력의 속성 중 하나인데, 한(漢)나라 무제는 조금 달랐다. 그는 한창때 분하(汾河)에 배를 띄우고 '추풍사(秋風辭)'를 부르는데 마지막 구절은 허무였다. "환락이 극에 달했지만 슬픈 생각이 많도다/젊음이 얼마이리요 늙는 것을 어쩌겠는가(歡樂極兮哀情多/少壯幾時兮奈老何)"

무제가 많은 업적을 남긴 것은 젊어서 이미 권력 무상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러 대통령들과 그 동지들의 추기경 문상 장면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지금의 권력자들도 이 생각을 한다면 세월과 역사 앞에 조금은 겸허해질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