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선현들의 묘.

김흥근선생 묘(金興根先生墓)

야촌(1) 2014. 9. 19. 13:26

↑김흥근선생 묘(金興根先生 墓)

 

↑김흥근(金興根, 1796~1870) /사진>개미실사랑방

 

↑김흥근선생묘갈(金興根先生墓碣)

--------------------------------------------------------------------------------------------------------------------------------------

 

■김흥근선생 묘(金興根先生墓)

 

◈지정번호 : 경기도 향토 유적 제31호

◈소 재 지 : 포천군 일동면 기산리 46번지

 

[문과] 순조(純祖) 25년(1825) 을유(乙酉) 알성시(謁聖試) 병과(丙科) 2위(4/5)/합격연령>30歲[생원시] 순조

            (純祖) 13년(1813) 계유(癸酉) 증광시(增廣試)[생원] 3등(三等) 63위(93/100)/합격연령>18歲

 

김흥근선생의 묘는 기산리 소야 골 마을 금주산 동쪽기슭에 위치해 있다, 1단의 호석이 돌려진 원형봉분 앞에는 묘비와상석. 향로석. 제주 석. 그리고 좌우에는 망주석이 설치되어 있다.

 

김흥근1796년(정조 20)~1870년(고종 7) 선생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기경(起卿), 호는 유관(游觀). 본관은 新 안동(安東)으로 아버지 이조참판 명순(明淳)과 어머니 신광온(申光蘊)의 딸 평산신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좌의정 홍근(弘根)은 그의 형이다.

 

그는 1825년(순조 25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 예조판서. 경상도관찰사가 되었으나 가문의 세도를 믿고 방자한 행동을 하였다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아 전라남도 광양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또 묘 우측의 묘비는 1876년(고종 13년)에 건립된 것으로 팔작지붕형의 옥개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었다. 비문은 이경재(李景在)가 짓고 송근수(宋近洙)가 글씨를 쓰고, 이시민(李時敏)이 전했다. 비의 규모는 높이 130cm, 폭47cm, 두께24cm이다.

 

그의 별장을 탐냈던 흥선군이 대원군이 된 후, 별장을 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거절하자, 흥선대원군은 아들 고종을 데리고 그의 별장에서 하룻밤을 묵어갔다고 한다. 임금이 머문 곳을 사저로 쓸 수 없다는 사회통념 때문에 김흥근은 별장을 흥선대원군에게 헌납하였다.

 

김흥근의 별장을 반강제로 압수한 흥선대원군은 별장이름을 석파정이라 바꾸고 자신의 별장으로 사용하였다. 

'■ 보학 > 선현들의 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채호선생 묘/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0) 2014.10.09
태종 무열왕릉[김춘추]  (0) 2014.09.22
경기도의 능원 묘  (0) 2014.09.19
세도정치와 김좌근선생 묘  (0) 2014.09.10
移葬의 理由  (0) 2014.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