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移葬)의 이유
2014년 08월 23일
혹시나 역시나
가끔 풍수에 눈이 멀어서 죽은 조상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풍수의 근원과 사상 그리고 원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사람 저사람 말에 부화뇌동하면 죽은 조상만 괴롭힌다.
삼성 이병철 회장의 선친은 지금 수원시 장안구에 모셔져 있지만, 이곳에 묻히지 전까지 7-8차례 이장했다고 전한다.
이병철 회장은 명당에 모신다는 일념보다는 나쁜 곳을 피해서 편안한 자리를 잡으려고 노력했다고 전한다.
현재의 묘지도 그리 대단한 명당이 아니지만, 편안한 자리인 것만은 사실이니 이병철 회장은 성공한 셈이다.
정치권의 모 인사는 장관이라는 벼슬을 얻으려고, 1-2년에 한 번꼴로 이장을 하는 바람에 친형제도 자기 아버지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결국은 명당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남사고는 선친의 묘를 아홉 번 옮겼는데도 후손이 끊긴다는 자리밖에 잡지 못해서 이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여겨 더 이상 이장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김좌근 김병기(生父는 판돈녕 영근(泳根)의 아들로 영의정 좌근(左根)에게 입양)
부자의 묘비와 장명등. 서울대 박물관에 기증보관되어 있다
오래된 무덤은 파헤치지 말자
이장에는 불가항력적인 이장과 자의적인 이장이 있다. 도로가 나든가 산업단지가 들어서서 이장하는 경우야 할 수 없는 일이고, 집안에 흉사가 끊이지 않아서 가족들의 합의하에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신 분들도 살기위해 하는 일이다.
그 밖에 벌초하기가 힘들어서 수 십 기의 조상 무덤을 한곳에 모아, 납골당을 설치하는 경우는 봐 줄만하지만, 산을 팔기위해서 이장하는 경우도 있다. 조상의 무덤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이장해야 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묵 묘를 만들면 되지, 그분이 그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무시하는 것은 무식한 짓이다.
수백 년간 평화로웠던 유골을 끄집어내어 불에 태울 필요는 없다.
수백 년이 지났다면 이미 자연으로 돌아가신 분이다. 더 이상 조상의 묘를 돌보지 않겠다는 고유제를 지내는 것으로도 족할 것이다. 땅속 무덤은 천년이라도 유지할 수 있지만, 땅위 납골묘나 납골당은 60년을 유지하기도 힘들 것이다. 60년 후에는 또 누가 유지관리 할 것인가.
내가 편하자고 조상과 후손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식견이 부족한 탓이다.
조선 말 세도가였던 안동김씨 영의정 김좌근(1797-1869)과 영의정을 세번이나 역임한 그의 양아들 김병기(1818-1875)의 무덤이 이천시 백사면 내촌리 김좌근 고택 뒷산에 있었다. 그런데 2006년경 후손들이 두 분의 묘를 파묘하여, 화장∙산골한 뒤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마을사람들이 전한다.
그 후 2009년 김좌근의 6대 손녀가 고택과 묘비를 비롯한 주변땅과 석물들을 서울대에 기증하였다.
조상이 물려준 산을 팔기 위해 조상의 묘지를 파묘하는 것보다는 백번 낫기는 하지만, 아무리 사문중의 집안이지만 5대손이 그것도 영의정까지 지낸 조상의 무덤을 없애는 것은 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일가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므로 더 이상 묘지를 관리할 수 없다는 이유이지만, 이미 문화재급의 묘지이고 기증받은 단체에서 관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후손으로써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조상의 묘지를 없애거나 이장할 경우에는 역사적 의의 외에도, 풍수 전문가들과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조상의 흔적을 없애는 것은 나의 권리가 아니다.
묘지가 사유물이라고 생각하지마라. 그것은 돌아가신 분의 유택이다.
이것이 분묘기지권이라는 관습법이 생긴 이유이다.
내가 관리하지 못한다면 그냥 묵혀도 좋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그것이 순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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