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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선생유고발(六先生遺稿跋)/박숭고(朴崇古)

야촌(1) 2014. 7. 27. 16:52

육선생유고(六先生遺稿)

 

사육신의 시문집. 박팽년(朴彭年)의 후손인 박숭고(朴崇古)가 편집한 것으로, 1658년 간행하고 1878년 중간하였다. 3권 3책으로 1권에는 박팽년의 시, 2권에는 성삼문(成三問)의 시, 3권에는 나머지 사육신의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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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선생유고발(六先生遺稿跋)

 

지은이 : 박숭고(朴崇古)

 

박 선생은 나의 7대조이다. 선인(先人)이 일찍이 그분의 유시(遺詩) 약간을 얻었으나, 모은 것이 광범위하지 못해 출간을 하지 못하였다. 이에 내가 계속해서 더 수집하고 있었는데, 무자년에 충익공(忠翼公) 정곤수(鄭崑壽)의 손자인 정유현(鄭惟顯)의 집에서 한 편(編)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충익공이 평소에 우리 선조의 유문(遺文)을 모아 기록하고 《평양일고(平陽逸稿)》라고 이름을 붙여 두었던 것인데, 여러 차례 병화(兵火)를 겪는 동안에도 없어지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성 선생(成先生)의 유고(遺稿)는 만력(萬曆) 연간에 윤공 유후(尹公裕後)가 간행했던 것이고, 이(李), 하(河), 유(柳), 유(兪) 네 선생의 유문은 조공 흡(趙公潝)의 고고록(考古錄)에서 구한 것인데, 여기에 또 제현(諸賢)들의 패기(稗記)에 섞여 나오는 육선생의 언행(言行)과 사적(事跡)을 찾아내어 이것을 3책(冊) 1질(帙)로 합성(合成)하여 상자에 담아 둔 지가 몇 해 되었다.

 

내가 다행스럽게도 한 고을을 맡게 됨에 판각을 하여 후세에 전하려고 하였는데, 힘이 미치지 못하여 감히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관찰사 이공 경억(李公慶億)이 이 도에 부임하게 되었는데, 그도 우리 선조의 외예손(外裔孫)이다.

 

그가 이러한 사정을 개탄스럽게 여기고는 장인을 모으고 경비를 보조하여 일이 마침내 완성되었으니, 어찌 운수(運數)가 그 사이에 존재한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지금으로부터 육선생이 계시던 때까지는 200여 년이 되고 보니, 유편(遺篇)이 산일되어 많이 얻을 수가 없으므로 우선 이것만이라도 모아서 후세에 전해지기를 도모하는 바이다.

 

무술년 10월 24일 통훈대부(通訓大夫) 행 영춘 현감(行永春縣監) 평양후인(平陽後人) 박숭고(朴崇古)는 삼가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