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선생유고(六先生遺稿)
사육신의 시문집. 박팽년(朴彭年)의 후손인 박숭고(朴崇古)가 편집한 것으로, 1658년 간행하고 1878년 중간하였다. 3권 3책으로 1권에는 박팽년의 시, 2권에는 성삼문(成三問)의 시, 3권에는 나머지 사육신의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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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선생유고서(六先生遺稿序)
지은이 : 조경(趙絅)
명(明)나라 사람이 임오년 〈제신록(諸臣錄)〉에 서술(敍述)하기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은택을 흠뻑 입었으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절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는데, 나는 육신(六臣)의 유고(遺稿)에서 또한 이런 느낌을 받았다.
그때를 당하여 천명(天命)은 소속된 바가 있었고 인심(人心)도 귀속된 바가 있었던 것이 마치 사물의 작용에 따라 물이 동요하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저 육신(六臣)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조화(造化)의 풀무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감히 절의(節義)만을 안은 채 몸은 가루가 되고 자손(子孫)은 씨도 없이 화를 당하는데도 돌아보지 않았다는 말인가.
오늘날의 실정으로 비추어 보면, 육신의 일은 비록 미치고 실성(失性)하여, 사는 것이 즐겁고 죽는 것이 싫은 줄을 몰랐다고 해도 가할 것이다. 저 기어다니는 곤충과 부리로 숨 쉬는 새들과 꿈틀거리는 벌레까지도 모두 편하고 이로운 데로 나아가고 위태로움을 피할 줄 아는데, 더구나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인 사람이 기미(機微)를 알고 해로움을 경계할 줄 아는 것이 어찌 벌레나 짐승들과 같겠는가. 하물며 뭇사람 중에 뛰어난 현자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천운(天運)을 얻어 왕위에 오르신 임금님은 곧 우리 옛 임금의 형제이시며, 용의 비늘을 붙들고 날개에 붙은 무리들은 곧 우리와 함께 출입하고 기거를 같이했던 벗들이었으니, 좌우(左右)와 상하(上下)에 어느 곳이든 용납받지 못할 곳이 없는데, 어찌 부귀영화를 헌신짝 버리듯이 하고 도거(刀鋸)와 정확(鼎鑊)과 같은 극형을 엿처럼 달게 여겼다는 말인가.
육신(六臣)이 훌륭한가, 그렇지 않은가? 죽음을 싫어했는가, 싫어하지 않았는가?
맹자가
“삶도 내가 원하는 바이고, 죽음 또한 내가 싫어하는 바이지만, 싫어하는 것이 죽음보다 더 심한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듯이 육군자(六君子)에게 싫어하는 것이 죽음보다 더 심한 것이 있지 않았는지 어찌 알겠는가.
내가 육군자의 유고(遺稿)를 읽고 이에 우리 선왕(先王)의 넓고 크신 도량이 문황제(文皇帝)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학(正學) 방효유(方孝孺)가 성조(成祖)의 혁명(革命)에 맞서 절의를 굽히지 않고 죽어가자, 문황제는 방효유의 삼족(三族)을 멸했을 뿐만 아니라 효유의 문집(文集)을 소장하고 있는 자까지 연좌하여 죽이고 말았다.
지금 육신(六臣)의 저술로 문(文)과 변려(駢儷)와 시율(詩律) 중에 훌륭한 작품들이 《동문선(東文選)》에 그대로 실려 있고 옛것을 숭상하는 선비들이 옮겨 적어서 간직한 것이 있으니, 선왕의 성덕을 여기에서 알 수가 있겠다.
평양자(平陽子)의 후손인 숭고(崇古)가 또 임금의 은혜를 입어 영춘 현감(永春縣監)이 되더니, 임금의 깊으신 은혜에 감격하고 선조와 함께 죽은 벗들을 생각하여 널리 육신의 유필(遺筆)을 구하였다.
그리하여 마음과 정성을 쏟은 지 10여 년 만에 드디어 초미(燋尾)로 하여금 다시 완전하게 하고, 잃었던 구슬을 갈아서 빛나게 하였으니, 한결같은 정성으로 이룩한 결과라고 하겠다.
지금 판각에 부쳐서 오래도록 전하려 하는 것은, 선왕(先王)이 포창하여 기록하도록 한 하교를 받들어 선양하기 위한 것이니, 모두가 기록에 남길 만한 일들이다. 무술년 9월 어느 날에 한양 후인(漢陽後人) 조경(趙絅)은 삼가 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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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1]제신록(諸臣錄) : 임오년(1402)에 명(明)나라 성조(成祖)가 혜제(惠帝)를 폐위하고 제위(帝位)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이에 항거한 방효유(方孝孺) 등 여러 신하들이 살해된 일을 실은 기록을 말한다.
[주02]용의 …… 무리들은 : 제왕의 힘을 빌려 성공한 자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과거에 급제한
자를 지칭하기도 한다.
[주03]삶도 …… 있다 : 이 글은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 나오는 어아소욕장(魚我所欲章)의 일부
를 요약하여 인용한 것이다.
[주04]정학(正學) …… 죽어가자 : 정학은 명나라 홍무(洪武) 연간에 촉 헌왕(蜀獻王)이 방효유를 초빙하여 세자
사(世子師)로 삼고 특수한 예로 대접하면서 그가 글공부하던 집에 붙여 준 이름이다.
그의 자(字)는 희고(希古) 또는 희직(希直)이며, 호는 손지재(遜志齋)이다. 연왕(燕王)이었던 성조(成祖)가
혜제(惠帝)를 분사(焚死)시키고 방효유를 불러 천하에 공포할 조서(詔書)를 쓰게 하자, 그가 붓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죽더라도 조서를 쓸 수 없다고 항거하다가 결국 성조의 의해 책살(磔殺)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그
의 수많은 친족들과 친구들이 연좌되어 살해되었다. 《明史 卷141 方孝孺列傳》
[주05]초미(燋尾)로 …… 하고 : 초미는 후한(後漢) 때에 채옹(蔡邕)이 나무 태우는 소리를 듣고 좋은 재목임을 알
고는 이것을 가져다 만든 명금(名琴)이다. 《後漢書 卷60 蔡邕列傳》 여기서는 박숭고(朴崇古)가 유실된
육선생의 유고를 수집하여 책으로 만든 사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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