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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진보 교육감 당선, 보수 분열 때문? - 이범

야촌(1) 2014. 6. 11. 20:36

[세상 읽기] 진보 교육감 당선, 보수 분열 때문? / 이범

한겨래>등록 : 2014.06.11 18:26

 

전국적으로 진보 교육감이 약진한 것이 ‘보수 단일화 실패’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보수 후보들의 득표율을 더하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진보 후보를 앞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선거의 생리를 모르는 어불성설이다.

 

후보 단일화나 정당 간 합당을 하면 원래 둘의 지지율을 합친 것보다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이 진보/보수 여부만으로 지지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는 ‘중도’라고 분류될 법한 후보들도 꽤 있었다.

 

그럼에도 유독 ‘보수표가 더 많다’고 강조하는 것은 진보 교육감의 정당성을 깎아내리려는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게 한다.

보수 분열은 지난번이나 이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유독 이번 선거에서 진보 후보들이 약진한 것은 전반적인 지지율 상승 덕이 크다.

 

2회 연속 진보 단일후보를 낸 12지역 가운데 11지역에서 진보 후보의 득표율이 상승했고, 서울의 경우 34.3%(2010년 곽노현), 37.0%(2012년 재선거 이수호), 39.1%(2014년 조희연)로 연속 상승했다. 진보 교육감의 약진을 단순히 ‘보수 분열’ 때문이라고 해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전국적으로 지지율이 오른 것은 진보 교육감 1기의 성과에 대한 호감과 세월호 민심의 복합적 결과로 보인다.

유독 경기도만 42.3%(2010년 김상곤)에서 36.5%(2014년 이재정)로 하락했다.

 

이것은 7명의 후보가 나서 군소 후보들의 표 잠식이 심했던 점,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진보 단일화 경선 기간이 3주나 연장되면서 이재정 후보가 장기간 집중 견제 대상이 된 점, 김상곤 교육감이 도지사에 출마한 것에 대한 일부 부정적 여론이 정치인 출신인 이재정 후보에 대한 거부감으로 투영된 점 때문으로 보인다.

 

‘전교조 프레임’의 영향력은 감소했다. 당선된 진보 후보 13명 중 8명이 전교조 지부장·지회장 출신이다. 특히 해직교사이자 지부장 출신인 강원도 민병희 교육감이 보수적인 지역 정서에도 불구하고 46.4%로 여유있게 재선되었다.

 

무상급식, 고교평준화, 혁신학교 등의 정책을 소신껏 추진한 것에 대한 호평이 전교조 관련 흑색선전을 상쇄하고도 남았던 것이다.

 

2010년의 ‘무상급식’에 견줄 만한 공통 이슈는 없었지만 ‘혁신학교’가 부분적으로 그 자리를 메워주었다. 그리고 곳곳에서 과감하고 능동적인 선거캠페인과 공약으로 중도층의 지지를 끌어모았다. 충북 김병우 후보의 메인 슬로건 “긍정에너지를 모아 충북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겠습니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대통합 교육감”은 44.5%의 지지로 돌아왔고, 세종 최교진 후보의 ‘캠퍼스형 고등학교’, 경기 이재정 후보의 ‘학부모 인터넷방송국’과 ‘교사 담당학년 조기 배정’, 부산 김석준 후보의 ‘교사·학생·학부모 권리를 포괄하는 학교조례 제정’ 등은 진보 교육정책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만한 공약들이다.

 

끝으로 한가지 더. 조희연 후보가 서울 교육감에 당선된 것이 고승덕 후보 딸과 조희연 후보 아들의 ‘우연한 합작품’이라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고승덕 후보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은 그의 딸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을 때가 아니라,

 

그가 딸의 글마저 ‘공작의 일환’이라는 투로 맞받아치는 순간이었다. 고 후보의 표밭으로 여겨졌던 강남에서조차 중장년층 여성 표심이 확 돌아서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 와중에 문용린 후보는 ‘패륜’ 운운하며 스스로 진흙탕에 뛰어들었다.

 

즉 사건의 발단은 우연이었지만, 이후 전개 과정에서 두 후보의 인품과 공감능력의 부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유일하게 조희연 후보만이 유권자들이 요구하는 교육감 자격 심사에 합격한 것이다.

 

이범 교육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