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서(書).간찰(簡札)

김로(金輅)선생 간찰

야촌(1) 2014. 4. 26. 17:33

 

호조판서를 지내고 익종의 묘정에 배향된 文獻公 김로(金輅)선생의 간찰 1점.

 

 

김로(金輅)

 

1355(공민왕 4)∼1416(태종 16).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延安). 고려 공민왕 때 사마시 생원으로 입신하여 호군이 되고 그뒤 삼사우윤(三司右尹)이 되었다.

 

1392년(태조 1) 조선개국시 태조를 도와 개국공신 3등에 책록되었으며 이어 대호군이 되었다. 1396년에 중추원사로 있으면서 서북면 이성수령(泥城守令)을 겸직했다.

 

1397년 사농경(司農卿)이 되고, 이듬해 동지중추원사·의흥삼군부 우군동지절제사 등을 역임하였다. 같은해 판중추원사에 오르면서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 등이 음모하였다는 제1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데 협력한 공으로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그 뒤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로 있을 때에 연성군(延城君)에 봉해졌다. 1409년(태종 9)에 하정사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1411년이숭인(李崇仁)을 함부로 처벌하였다는 죄로 탄핵을 받았다. 시호는 공경(恭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