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서(書).간찰(簡札)

정세규 간찰(鄭世規簡札)

야촌(1) 2014. 5. 25. 18:42

▲크기 40㎝(가로) x 28㎝(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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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규 간찰(鄭世規簡札)

 

1583(선조16)-1661(현종 2). 조선시대의 학자. 자는 군칙(君則). 호는 동리(東里). 본관은 동래(東萊). 정진(鄭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의정 정언신(鄭彦信)이고, 아버지는 생원 율(慄)이고 어머니는 원호준(元虎俊)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음보(蔭補)로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에 등용. 1628년(인조 6) 화순현감(和順縣監)으로 선정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 받고, 안산군수(安山郡守)를 거쳐 1636년 공충도 관찰사(公忠道觀察使)에 특진, 이 해 겨울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군사를 이끌고 포위 당한 남한산성(南漢山城)을 향해 진격했으나 용인(龍仁)에서 패전하였다.

 

호조참의(戶曹參議)를 거쳐 1641년 전라도 관찰사, 이어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를 지내고, 1644년 공조판서에 승진,1654년(효종 5) 이조판서로 강화도를 시찰 후 승천(昇天). 연미(燕尾). 갑곶(甲串). 광성(廣城)등 여러 진(津)에 진(鎭)을 설치케 했다. 형조판서를 지낸뒤 은퇴했다.

 

그의 출세에는 김육(金堉)의 뒷받침이 있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 문음출신으로 육경에 오른 가장 대표적 인물이다. 시호는 경헌(景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