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묘지.묘갈.묘표[女]

淑夫人李氏墓誌銘/백사 이항복의 누님

야촌(1) 2014. 3. 16. 00:43

숙부인 이씨 묘지명(淑夫人李氏墓誌銘)

 

이항복 술(李恒福 述)

 

숙부인 이씨는 경주인(慶州人)인데, 신라 개국(開國)의 원훈(元勳)인 알평(謁平)의 후예로, 자헌대부(資憲大夫) 의정부 우참찬(議政府右參贊)을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된 휘 몽량(夢亮)의 딸이며, 자헌대부 이조판서 눌헌(訥軒) 이선생(李先生) 문강공(文剛公) 사균(思鈞)의 외 증손(外曾孫)이다.

 

여흥민씨(驪興閔氏)에게 시집가서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 세량(世良)의 며느리가 되고, 승정원 좌승지 선(善)의 아내가 되어 딸 하나를 낳았는데, 그 딸은 숭록대부(崇祿大夫) 금계군(錦溪君) 박동량(朴東亮)의 아내가 되어 아들 미(瀰)를 낳았는바, 미는 옹주(翁主)에게 장가들어 금양위(錦陽尉)가 되었고, 딸 하나는 진사(進士) 이명한(李明漢)의 아내가 되었으며, 나머지 두 남녀는 어리다.

 

처음에 부인(夫人)의 어머니인 정경부인(貞敬夫人) 최씨(崔氏)는 눌헌의 부인 황씨(黃氏)에게 외손녀가 되는데, 막 나서부터 현덕(賢德)이 있었으므로, 부인이 여러 손자들과 달리 특별히 사랑하였다. 자라서는 참찬공(參贊公)에게 시집가서 가정(嘉靖) 계묘년 10월 초하룻날에 부인을 낳았는데, 부인이 품안에 있을 적에 황 부인이 날마다 세 번씩 물어 보았고, 태어난 지 한 돌이 되어서는 문득 부인을 데려다가 길렀다.

 

부인은 말을 하 기도 전에 맑은 광채가 이미 사람을 쏘아 비췄고, 조금 자라서는 두각(頭角)이 더욱 뛰어났다. 나이 8, 9세에 미쳐서는 부의(婦儀)와 여공(女紅)을 배우지 않고도 잘하였으므로, 바느질을 해 놓으면 손으로 한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황 부인이 장주(掌珠)처럼 놀리면서 차마 하루도 무릎에서 떼놓지 못하여 마지않았고, 항상 부인의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머리를 기울여 입가에 가까이 대고 이르기를, “우리 손녀를 얻어가는 자는 집을 보존하는 주인이 될 것이다.”고 하였다. 

 

이때 대승선(大承宣)이 작고한 지 오래지 않았는데, 심부인(沈夫人)이 홀로되어 또한 심씨(沈氏)의 제사를 맡았었으므로, 두 집의 조천(祧遷)되지 않은 신주(神主)를 두 사당에 다 모시었다. 그리고 가업(家業)이 넉넉하였으므로, 심 부인이 중대한 종사(宗祀)와 많은 노비(奴婢)들을 생각하여, 한 아들의 재주를 어질게 여기고 그에 걸맞는 훌륭한 배필을 구하여 마침내 부인에게 장가를 들였다.

 

부인은 이때에 나이 12세였으니, 보통 아이들 같았으면 한창 죽마(竹馬)나 타고 모래장난이나 하기에 겨를이 없었을 터인데, 부인은 예(禮)로써 몸을 스스로 단속하였으므로, 문(門)에 들어가면 비어(婢御)들이 서로 놀라고, 당(堂)에 올라가면 황고(皇姑)가 기뻐하여, 며느리의 도리와 아내의 도리가 모두 의식에 맞아서 50여 년 동안 가정을 화목하고 즐겁게 꾸려나갔다.

 

민 승선(閔承宣)이 무신년 10월에 나이 70세로 작고하였는데, 그로부터 5년 뒤인 임자년 7월에 부인 또한 70세로 작고하여 9월 모일(某日)에 파주(坡州)에 부장(祔葬)하였다. 참찬공이 두 번 장가들어 모두 4남 5녀를 두었는데, 부인이 최씨에게 장녀가 되고, 가장 막내가 항복(恒福)이다.

 

항복이 막 나서는 젖이 떨어져 부인에게서 젖을 먹었고, 젊어서는 부모를 여의고 부인에게서 의식(衣食)을 제공받았으며, 늙어서는 문정(門停)이 서로 연하여 부인을 조석으로 뵈었는데, 죽는 것은 먼저하지 못하여 부인에게 명사(銘辭)를 부치게 되었다. 지석(誌石)에 글을 새겨 영구히 전하려 하노니, 이것을 차마 한단 말인가. 이것을 명으로 삼노라.

 

[주D-001]대승선(大承宣) : 승선은 승지(承旨)의 별칭이니, 즉 민세량(閔世良)과 민선(閔善) 부자(父子)가 모두 좌승지(左承旨)를 지냈으므로, 여기서 대승선은 곧 아버지인 민세량을 가리킨 말이다.

 

백사집 제3권> 묘지(墓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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淑夫人李氏墓誌

 

淑夫人李氏。慶州人。新羅開國元勳謁平之後。資憲大夫議政府右參贊贈領議政諱夢亮之女。資憲大夫吏曹判書訥軒李先生文剛公思鈞之外曾孫。嫁驪興閔氏。爲承政院左承旨世良之婦。承政院左承旨善之妻。生一女。爲崇祿大夫錦溪君朴東亮妻。生子瀰。尙翁主爲錦陽尉。女一人。爲進士李明漢妻。餘二男女幼。初夫人之母貞敬大夫人崔氏。於訥軒夫人黃氏。爲外孫女。生有賢德。夫人奇愛異諸孫。長適參贊公。以嘉靖癸卯十月朔日。生夫人。夫人在懷。黃夫人日三問。墮地而睟(난01)。輒取而養之。未語而晶光已射人。稍長而頭角盖嶃然。及年八九。婦儀女紅。不學而能。鍼線所施。非若手所爲者。黃夫人弄如掌珠。不忍一日離膝不置。常撫頂辟咡曰。得吾孫者。保家之主也。時太承宣亡未久。沈夫人寡居。亦有沈氏烝甞之托。二家未祧之主。咸序二廟。而家業饒厚。沈夫人惟宗祀之重。臧獲之殷。賢一子之才。求宜配而齊美者。遂委禽于夫人。夫人是時年十二。在凡兒。方騎竹摶沙之不暇。夫人則以禮自持。入門而婢御交驚。上堂而皇姑欣然。爲婦爲妻。咸中儀式。好合宜樂五十餘年。閔承宣以戊申十月。年七十而亡。居五年壬子七月。夫人亦以年七十而亡。九月某日。祔葬于坡州。參贊公凡再娶。得四男五女。夫人於崔氏長女。其最季恒福。生而絶乳。仰哺於夫人。少失怙恃。衣食於夫人。老連門停。朝夕於夫人。死未及先。寄辭於夫人。鑽石垂永。其忍是焉。是爲銘。<끝>

 

[난-01]睟 : 晬

 

白沙集卷之三>墓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