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정효(李廷孝)

야촌(1) 2014. 1. 14. 23:51

■ 33世 이정효(李廷孝)

 

◈자 순거(舜擧)

◈호 후송(後松)

◈생년 1832(순조 32)

◈졸년 1917

◈시대 조선 말기

◈본관 경주(慶州)

◈활동분야 학자 > 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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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순조 32)∼1917년 6월 7일. 조선 말기 유학자. 자는 순거(舜擧)이고, 호는 후송(後松)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임진왜란때 의병장 이석종(李碩宗)의 8대손으로 오늘날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양천리 출생이다.

 

조부는 이우하(李友夏)이고, 부친 이익선(李翼璇)과 모친 김양규(金亮奎)의 딸 김해김씨(金海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838년(헌종 4) 숙부 이익만(李翼萬)에게 나아가 배웠는데, 총명하여 한 번 배운 것은 잊지 않았다.

12‧13세에 이미 사서삼경을 통달하였고, 한시를 잘 지어 명성이 있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으로 나라의 정세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 세상사와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 후 부친이 거처했던 집을 ‘거경재(居敬齋)’라고 편액하고 그곳에서 사서(四書)와 주자서(朱子書)를 탐독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특히 주희(朱熹)의 「백록동규(白鹿洞規)」를 써서 걸어 두고 언행을 삼갔고, 또 한원진(韓元震)‧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 등 대학자들이 지은 여러 격훈(格訓)을 곁에 두고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경계하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참여하려고 하였으나, 많은 나이를 걱정한 주위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무후(武侯)의 「출사표(出師表)」와 『사기(史記)』의 「장중승전(張中丞傳)」을 외우며 자신의 뜻을 의탁하였다. 1905년(광무 9)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泳煥)이 순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을 하며 뇌문(誄文)을 지어 애도하였다. 향년 8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이유곤(李?昆)‧이유면(李?冕)이다.

 

저서로 『후송집(後松集)』이 있다.

 

[참고문헌]

後松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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