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옥(施玉)_ 김재로 초상 한국본.
↑시옥(施玉)_ 김재로 초상 중국본(1738)
1738년(57세)에 김재로가 주청사(奏請使)로 북경에 갔을 때 중국의 궁정 화가 시옥
(施玉)에게 그려 받은 것이다. 올이 치밀하고 얇은 통견의 중국 비단에 중국풍으로
그린 초상화이다.
↑김재로 초상화(작자 미상, 선현영정첩 중)
◇문화재 종목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
◇명칭 : 김재로영정 (金在魯影幀)
◇분류 : 유물 / 일반회화/ 인물화/ 초상화
◇수량 및 면적 : 2폭
◇지정일(등록일) : 1989.12.28
◇해제일 : 2001.04.02
◇소재지 : 인천 연수구 옥련동 525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소유자(소유단체)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경기도 호암미술관에 매각되어 2001년 4월 2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 지정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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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로(金在魯)
[문과] 숙종(肅宗) 36년(1710) 경인(庚寅) 춘당대시(春塘臺試) 을과(乙科) 1위(2/5)/합격연령 : 29歲
[진사시] 숙종(肅宗) 28년(1702) 임오(壬午) 식년시(式年試) [진사] 2등(二等) 3위(8/100)/합격나이 21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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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2(숙종 8)∼1759(영조 3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 청풍(淸風). 자 중례(仲禮). 호 청사(淸沙)·허주자(虛舟子). 시호 충정(忠靖). 우의정 구(構)의 아들. 1702년(숙종 28) 진사가 되고, 1710년 춘당대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지평(持平)·수찬(修撰) 등을 역임하였다.
1716년 부수찬(副修撰)으로서, 선현을 무고한 소론 유봉휘(柳鳳輝)·정식(鄭?) 등을 탄핵하여 파직되게 하였다. 1720년 호조·이조의 참의를 거쳐 부제학이 되고, 이듬해 개성부유수가 되었다. 1722년 신임사화로 문외출송(門外黜送)되었다가 이듬해 울산에 안치(安置)되고, 1724년 풀려나와 이듬해 대사간에 재등용되었으나 1727년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재등장하자 다시 파직되었다.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충주목사로 다시 기용되어, 호서안무사(湖西安撫使)를 겸하여 난의 토평에 공을 세웠다. 그 해 다시 당파 조성죄로 삭직되나, 곧 복직되어 춘추관지사로서 실록도청당상(實錄都廳堂上)을 겸직하여 《경종수정실록(景宗修正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731년 신임사화로 죽은 노론 김창집(金昌集)·이이명(李?命)을 신원(伸寃)되게 하고, 이듬해 세자의 책례도감제조(冊禮都監提調)를 지낸 뒤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이 되었다. 1737년 탕평책을 어긴 죄로 파직되었다가, 곧 좌의정에 복직되었다.
이듬해 중추부판사로 주청사(奏請使)가 되어 청나라에 가서, 신간(新刊)된 《명사(明史)》를 구해왔으며, 1740년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1746년 김종서(金宗瑞) ·황보 인(皇甫仁)의 복관을 건의하여 신원되게 하였다. 영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천의소감언해(闡義昭鑑諺解)》 《난여(爛餘)》, 편서에 《예기보주(禮記補註)》 《청풍김씨세보(世譜)》 《좌씨집선속(左氏輯選續)》 《금석록(金石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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