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음 김상헌과 조부 김생해선생 묘.
↑군수를 지낸 김상헌의 조부 김생해(金生海) 선생 묘이다.
↑앞의 묘는 청음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묘이고 뒷편이 조부 김생해(金生海) 묘이다.
↑김생해 선생묘 뒤에서 내려다 본 안산 전경(아랫 묘가 청음선생 묘이다)
↑사진속 김상헌 가족묘역에는 조부 김생해, 김상헌의 아들 김광찬, 백부 김극효, 백모 광주이씨, 부인 성주이씨의
묘가 보인다.
↑김상헌선생 묘비석
↑김상헌선생신도비(金尙憲先生神道碑) /<사진자료: 인터넷>
○김상헌선생 묘의 규모(면적) : 300㎡
○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산 5
○문화재 지정번호: 경기도 기념물 제100호
○문화재지정일 : 1987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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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은 봉분(높이1.7m, 둘레직경 4m) 앞에 묘표(비신>55㎝x13.5㎝x105㎝)가 있고, 봉분의 약간 우측하에 묘비(墓碑, 비신>73㎝x16㎝x159.5㎝)가 있으며, 상석(144㎝x100㎝x57㎝)과 문인석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고. 망주석은 없다.
묘표는 선생이 돌아가신지 17년 후인 1669년(현종 12) 4월에 건립되었다.
묘의 오른쪽에는 현종 12년(1671)에 세운 선생의 묘비가 있는데 비의 묘명(墓銘)은 김수증(金壽增)이 쓰고,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宋俊吉)이 썼다. 아랫쪽에 내려오면 선생의 신도비가 있다.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
조선중기 문신이자 대학자인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묘이다.
그의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 석실산인(石室山人), 본관은 안동이다. 시호는 문정(文正), 극효(克孝)의 아들이며, 상용의 동생이다.
1590년(선조 23) 진사에 합격하고 1608년(광해군 즉위) 문과 중시에 급제하여 호당을 거치면서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이조참의가 되었으며 청서파의 영수(領袖)가 되었다. 이어 대사간· 도승지· 부제학· 육조의 판서 및 예문관· 성균관의 제학 등을 지냈다.
1636년 예조판서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주화론(主和論)을 배척하고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펴다가 인조가 항복하자 은퇴하였다. 1639년 청이 명을 공격하기 위해 요구한 출병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청에 압송되었다가6년 후에 귀국하고 좌의정에 올랐다.
효종이 즉위하여 북벌을 추진할 때는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노(大老)라고 존경을 받았고, 1652년 세상을 떠났다. 남양주 석실서원, 정주 봉명서원, 개성 숭양서원 등에 제향되었으며, 문집으로 『청음집』(40권 14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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